[헬스파일] 여름 치질
입력 2010-08-08 17:36
“들뜬 마음으로 즐겁게 떠난 바캉스 여행이었다. 바닷가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 가족들과 함께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을 때가지만 해도 좋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터졌다. 항문이 쓰리고 아파서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하필이면 그 때 치질이 도지다니….”
지난달 말 3박4일 동안 동해안 경포대 해수욕장을 다녀오자마자 필자를 찾은 김 모(42·주부)씨의 하소연이다. 김씨는 휴가 기간 내내 물놀이도 못하고 조신하게 지내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말 못할 고민, 항문 질환이 여름철 막바지 바캉스 족들을 괴롭히고 있다. 아무래도 음주 기회와 야외 육체활동이 갑자기 증가하면서 변비 치질 등과 같은 항문 질환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듯하다.
여행 중 가장 흔한 항문 질환은 변비와 설사다. 특히 여성은 바뀐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변비로 배변이 원활치 못하면 변이 단단해지게 되고 그 변이 배출될 때 항문이 찢어지는 손상(치열)을 입을 수 있다. 항문에 이 같은 상처가 생기면 반사적으로 항문 괄약근이 경련을 일으켜 항문이 좁아지게 되고, 그 다음 배변 때 더 많은 손상을 입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럴 때는 무엇보다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해 항문 주위 근육의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아울러 좌약 등을 이용, 찢어진 항문 부위에 대한 자극을 완화시키는 치료가 필요하다.
여행 중에는 변비 못지않게 치핵 등 치질도 악화되기 쉽다. 항문 주변에는 모세혈관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치핵은 이 부분이 부풀어 커진 상태를 가리킨다. 여름철에는 하루 이틀 사이에 갑자기 커져 콩알처럼 딱딱한 혈전이 생기는 혈전성 외치핵이 가장 흔하다. 또 앞서 예로 든 김씨처럼 그동안 별 말썽이 없던 내치핵이 갑자기 부풀어서 배변 때 항문 바깥쪽으로 빠져나오며 전체적으로 부어오르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하면서 적절한 약물 치료를 하면 대부분 증세가 호전되지만 상태가 심할 때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보통 항문 수술은 너무 아플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혈전성 외치핵 수술은 국소마취 하에 5∼10분이면 끝날 만큼 간단하므로 그리 겁먹을 일이 아니다.
의술의 발달로 뿌리가 깊은 내치핵도 수술 후 1∼2일 입원하는 것으로 해결이 가능해졌다. 상태가 그다지 심하지 않을 때는 ‘알타’ 주사요법이나 고무 밴드 결찰술 등 비(非) 수술요법으로 방문 당일 치료를 끝내는 길도 열려 있다.
항문 질환도 다른 병과 같이 방치하지 말고 발병 초기에 전문병원을 찾아야 고통이 적고 치료하기도 쉽다. 늦으면 그 만큼 치료가 복잡해지고 회복도 더디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이선호 구원항문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