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27)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

입력 2010-08-08 17:31


이토록 가슴 시리고 아름다운 사랑도 없을 겁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애통한 심경이 담긴 이 글은 424년 전 조선시대 원이 엄마가 사별한 남편에게 쓴 한글편지 중 일부입니다.

1998년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 지정으로 주인 없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명정(무덤에 덮는 천)에 ‘철성이씨’(고성이씨)라고 적힌 무덤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지표조사를 맡은 안동대 박물관은 고성이씨 문중의 입회하에 무덤의 부장품을 정리하던 중 이응태라는 이름과 가로 58㎝, 세로 34㎝의 한지에 빼곡히 써내려간 한글편지(위 사진) 한 통을 찾아냈지요.

“원이 아버지께.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로 시작되는 편지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하고 안타까운 사연이 강물처럼 굽이치고 있답니다.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아내가 쓴 편지의 병술년이라는 대목과 형(이몽태)이 ‘울면서 아우를 보낸다’라는 제목으로 적은 시 가운데 “아우와 함께 부모를 봉양한 지 31년”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이응태라는 사람은 1586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숨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사랑하는 지아비를 이렇게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으니 아내의 심경이야 오죽 비통하겠습니까.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원이라는 이름의 어린 아이와 뱃속에 아이를 가진 젊은 아내는 남편 잃은 설움을 편지로만 표현하기엔 부족했는지 삼과 머리카락을 함께 꼬아 삼은 미투리(아래 사진)를 무덤 속에 넣어두었답니다. 평소 입던 치마와 원이가 입던 저고리도 함께 말입니다. 이런 내용은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소개되고, 지난해 국제고고학 잡지 ‘앤티쿼티’에 실리기도 했지요.

안동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와 미투리가 서울 첫 나들이를 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선실 신설 개막전으로 열고 있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나라, 조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조선판 사랑과 영혼’의 이야기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풍조가 만연한 세태 때문일까요.

이광형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