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제재 국제사회 동참 압박하는데… 우리 정부는 동맹과 국익 사이 ‘딜레마’
입력 2010-08-06 22:45
정부가 대이란 제재 문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 유엔 차원에서 제재가 결정돼 우리 정부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이에 동참해야 마땅하지만 이란의 반발로 초래될 경제적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이 강력한 독자 제재법을 만들어 우리 정부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6일 이란 제재 관련 범부처 태스크포스(TF) 첫 공식 회의를 열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이 주재한 회의에서는 이란 제재에 따라 국내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과 이에 부합하는 제재 수위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란과의) 거래 중단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도적 개선책을 관계부처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재정부 외교통상부 등 6개 부처로 출범한 TF는 그동안 실무급에서 현황파악 등 자료 수집에 집중해 왔다.
정부가 이란 제재 문제와 관련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정부 당국자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라며 “이란 문제의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고, 겁이 나서 잠을 못 잘 지경”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란과의 경제관계는 간단치 않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쿠웨이트에 이어 한국의 4번째 원유 수입국이다. 전체 수입량의 9.5%에 달하는 막대한 원유를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원유 수입의 경우 제재 대상에서 빼 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반면 이란은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의 경우 원유 수입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 해 40억 달러를 이란에 수출하는데 여기에 관련된 중소기업만 2000여개에 달한다. 정부 당국자는 “이란과의 교역에서 수출대금을 못 받는 등 파장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우리의 경우 이란 제2의 은행인 멜라트은행 지점을 두고 있어 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이란 제재 문제는 자칫 중동외교 전반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 중동에서 ‘한국=미국=이스라엘’이라는 등식이 더욱 굳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 적국으로 분류될 가능성마저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동참하는 일과 파장을 어떻게 줄이느냐의 문제, 두 가지의 절묘한 조화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