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곡물수출 중단에 떨고있는 ‘지구촌 식탁’
입력 2010-08-06 18:26
폭염과 화재로 비상이 걸린 러시아 정부가 올해 말까지 곡물 수출을 전격 금지하면서 파급 효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5일(현지시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곡물 수출을 중단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푸틴 총리의 발표 직후 밀은 물론 옥수수, 귀리 등의 곡물가격은 급등했고 이를 재료로 만든 각종 식품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일부에서 사재기가 벌어졌고 투기 수요가 가격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흔들린 곡물시장=5일 오후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선 9월 인도분 밀 가격이 1일 최대 변동폭인 60센트(8.3%)가 올라 부셸당 785.75센트를 기록했다.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였다. 옥수수 가격도 뛰었다. 9월 인도분 옥수수 가격은 6.2% 오른 부셸당 425센트로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FT는 밀값 급등세가 물가 상승 악순환(price spiral)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농산물 분야 전문가들은 2008년 식량 파동이 재연될까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가 올해 곡물 수확량 전망치를 8500만t에서 7500만∼7000만t으로 하향 조정한 데다 주요 밀 수출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가 이미 대형 밀 수출 계약 가운데 몇 건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도 러시아의 요청으로 곡물 수출 금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밀 최대 수요국 중동 최대 타격=러시아에서 생산하는 밀은 부드러운 타입이다. 따라서 누룩을 넣지 않는 빵을 만들어야 하는 중동 국가들이 주요 소비자다. 이집트가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양을 수입하고 터키, 시리아, 이란, 리비아가 뒤를 잇고 있다. 이집트에선 벌써부터 식량 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영국,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거대 식품회사들이 원재료 상승을 이유로 빵, 비스킷 등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국내 소비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6일 러시아산 밀이 전체 수입량 대비 1.5%(2009년 기준)에 불과한 데다 선물시장에서 미리 사놓은 밀이 3개월 후까지는 들어올 예정이어서 연말까지는 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그러나 국제 밀 가격이 국내에 영향을 미칠 경우 저리로 사료 구매자금을 지원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엇갈린 미래 예측=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밀 가격이 최고점을 찍은 데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영국 BBC방송은 상품 관련 애널리스트들이 “러시아의 밀 수출 차질로 반사 이익을 노리는 업자들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또 정책 전문가들은 밀 재고량 부족이 심각한 정도가 아니고 유가 하락으로 인해 콩이나 옥수수로 만드는 바이오 연료에 대한 수요가 적기 때문에 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올해 세계 밀 생산량이 당초 예상보다 2500만t 줄어든 6억5100만t 수준이지만 현재 곡물시장은 2008년보다 매우 안정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민간 조사기관에선 올해 세계 밀 수확량이 FAO 전망보다 낮은 6억3000만t에 그치는 등 곡물 공급이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윤경 김아진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