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개헌안 가결… 민주화 일보 전진

입력 2010-08-06 17:33


아프리카 동부 국가 케냐에서 4일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 새 헌법 개정안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개정안은 2007년 말 발생한 대규모 유혈 사태를 치유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기에 ‘분쟁의 땅’ 케냐가 민주화와 화합의 미래를 위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 개정안 통과로 민주화 앞당겨=케냐 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 결과 헌법 개정안이 67%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고 5일 공식 발표했다고 BBC 방송 등이 보도했다.

아메드 이삭 하산 선관위원장은 “투표자 50% 이상이 개헌안을 비준했고 모든 주에서 25% 이상 찬성표를 얻어 개헌안이 통과됐음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개헌안은 50%+1표의 찬성을 얻으면 통과된다. 반대 캠페인 진영도 “다수의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음와이 키바키 케냐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다함께 케냐의 재탄생 여정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케냐가 민주주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뎠다”며 축하했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 유혈의 후유증 없는 깨끗한 선거를 치렀고, 국가의 치안 능력이 검증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2007년 12월 말 대선 후유증과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당시 선거 개표 직후 부정 의혹이 제기되면서 2개월간 종족 분쟁 성격을 띤 유혈 사태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1500여명이 사망하고 3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분쟁 종식 협상 결과가 이번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다.

개헌안은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의회와 지방정부로 분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토지 재분배, 대통령 권한 제한, 제한적 낙태허용, 이슬람 법정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뿌리 뽑지 못한 종족주의=이런 진전에도 불구하고 지역 정치의 낡은 관습은 탈피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현지 인권단체 관계자는 “친헌법파인 라일라 오딩가 총리의 고향인 은얀자 지역의 경우 거의 100% 찬성표를 던졌다”면서 “그들 중 얼마나 헌법 내용을 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종교보다는 종족에 기반한 지역 표심이 좌우했다. 제한적 낙태 허용 때문에 가톨릭계가 반대표를 호소했으나 루오 지역의 경우 가톨릭과 기독교 상관없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고, 칼렌진 지역은 종교와 무관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이는 케냐의 종족주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케냐는 40개 이상의 종족으로 구성돼 있다. 영국 식민지 정부는 종족 직업 차별 정책을 취해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마사이족은 군인, 카쿠유족은 농민, 루오족은 교사, 캄바족은 관료로 채용하는 식이었다.

케냐는 1963년 독립을 얻었으나 종족 갈등은 심화됐다. 대통령에게 막강 권한을 부여한 승자독식 정치시스템 탓이다. 이것이 결국 2007년 말 유혈사태로 이어졌던 것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