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이야’ 낸 문단 막내 전아리 “문학 천재, 수식어 부담… 좋은 장편 많이 쓰고 싶어”

입력 2010-08-06 17:48


장편 ‘팬이야’(노블마인)를 낸 문단의 최연소 소설가 전아리(24)를 4일 서울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세대 불문과에서 3학년까지 마친 그는 얼마 전 철학과로 전과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불어가 어려워서요”라고 장난스럽게 대답하더니 이내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소설적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현재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에 탐닉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문단의 ‘앙팡 테리블’로 불리며 청소년 시절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데뷔 후 책을 다섯 권이나 냈지만, 언론 인터뷰를 할 때마다 호기심 어린 시선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전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쿨하게 말했다. “‘문학 천재’라는 말은 촌스러워요. ‘문학 소녀’라는 말이 이제까지 들리는 것은 좀 부담스럽죠. 이제 나이도 스물다섯인데…….”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각종 청소년문학상을 휩쓸며 얻은 ‘소녀’, ‘천재’ 이미지가 그로 하여금 20대 작가들 중 독보적인 인지도를 차지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전아리 이후 공모전이나 백일장에 출품하며 실력을 쌓는 것은 ‘문소’, ‘문청’들의 습작 공식 비슷하게 됐다. “공모전 같은 걸 좋아하긴 하는데, 상 받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진 않거든요. 글쎄 모르겠어요. 거기 자꾸 얽매이면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고…. 저는 좋은 건 빨리빨리 잊어버리려고 해요.”

‘팬이야’는 스물아홉 살 정운이 아이돌 그룹 ‘시리우스’의 팬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의욕 없이 살아가던 계약직 사원 정운은 시리우스의 팬이 된 후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열정을 발견하게 되고, 일과 사랑 양쪽에서 성취를 이룬다. 가볍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도 유행중인 칙릿 소설을 연상케 할 만큼. ‘시계탑’,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 등 전아리의 전작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의외다.

“이번에는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넷에 연재도 됐었고….”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밝은 톤을 유지하며 살랑살랑 읽힌다. “읽기 쉬워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괜찮겠다”고 하자 “네, 그런 것도 어느 정도 생각했고요”라고 대답했다.

대학생 전아리가 이 작품을 주로 쓴 장소는 학교였다. 넷북을 들고 다니며 글을 쓰기도 하고, 컴퓨터실에 앉아 그 날 연재분을 올리기도 했다. 학교 생활에 대해 묻자 “성적이 안 좋다. 학교 선배 한 분이 성적이 비슷비슷한 제 친구들을 가리키면서 농담으로 ‘루저들’이라고 했다”며 깔깔깔 웃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생생한 회사 분위기와 스물아홉 노처녀(?)의 정서에 대해선 친구들과 선배들로부터 들은 얘기가 도움이 됐다고. 시와 영화와 술을 좋아한다는, 발랄한 소설가는 여느 대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글이라는 걸 계속 의식하고 쓸 수 있어서 (일찍 유명해진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쓸거니까…….” 전아리는 일찍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자만심이나 부담감의 함정을 피해 자기 자신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앞으로 작품성 있는, 정말 좋은 장편 소설들을 많이 쓰고 싶어요.” 그 자신 뿐 아니라 그에게 기대를 거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일 것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