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값 하늘 찔러도… 농민은 땅 꺼져라 한숨

입력 2010-08-05 21:46


“배추 값이 금값이라도 농민들에겐 남 얘기입니다.”



5일 오후 국내 최대 규모 고랭지 배추밭인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재배단지. 이곳에서 24년째 배추농사를 짓고 있는 이희만(53)씨는 “배추 값이 올랐다고 농민들이 떼돈을 번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대부분의 농민들이 수확을 하기 전에 중간상인에게 밭떼기로 넘기는 ‘포전’거래를 하기 때문에 농산물 값이 올라도 돈을 더 버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배추 값은 대형마트에서 상등품 1포기(2.5㎏ 기준)당 268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배 이상 올랐으나 이씨의 수입은 거의 늘지 않았다.

이씨는 올해 56만㎡(18만평)의 밭에 배추를 심어 990㎡(300평)당 200만∼350만원을 받고 중간상인에게 통째로 넘겼다. 990㎡당 3000포기의 배추가 생산되는 점을 감안하면 포기당 660∼1160원을 받은 셈이어서 지난해 평균 판매가격인 933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가격이 오를수록 농민들의 허탈감은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인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똑 부러지게 얘기하기도 어렵다. 산지유통인 박모(43)씨는 “올해 작황이 좋지 않아 배추는 990㎡당 300포기 이상을 버려야 한다”며 “예년에 비해 손실률이 높아 남는 게 없는데도 배추 값 급등으로 중간상인들이 배를 불렸다는 욕을 먹고 있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채소나 과일 어느 하나 싼 게 없다”고 아우성이다.

최근 농산물 가격 급등은 이상기온에 의한 작황 부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원도 원주에서는 지난 4월 꽃샘추위로 복숭아 재배면적 301㏊의 49.8%인 150㏊가 피해를 입었다. 전남 나주는 배 재배지 2355㏊ 가운데 1710㏊가 냉해를 입었다. 전남과 제주의 마늘 생산량은 12만8784t으로 지난해 18만3872t보다 30% 감소했다.

고질적 병폐인 복잡한 유통체계도 가격상승의 원인 중 하나다. 강원도 태백에서 서울 가락동시장으로 배추를 실어 보내려면 5t 트럭 1대 기준으로 운임비만 35만원이다. 여기에 배추를 싣는 데 필요한 인부 6명을 고용하면 40만원의 비용이 추가되고, 포장비와 위탁판매 수수료를 합치면 이미 배추 값은 생산비용의 배가 넘는다. 경매가 끝난 뒤 다시 소량 포장돼 대형마트나 채소가게로 납품하는 과정에서도 가격은 오른다.

명정식 농협 안성교육원 교수는 “도매상과 경매 과정을 거친 뒤 중도매인을 통해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복잡한 유통구조를 생산자와 소비자 중심의 직거래 구조로 단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백=정동원기자 cd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