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원교] 때로는 ‘보이는 손’이 필요하다
입력 2010-08-05 18:00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지 못하는 틀은 일종의 시장 실패”
정부의 ‘보이는 손(visible hand)’은 약일까 독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7·28 재·보선 전 대기업 역할론을 제기한 뒤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쪽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하면 다른 쪽에서는 이는 곧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일 뿐이라고 깎아내린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재계는 분주하게 수 싸움을 벌였다. 정부와 대기업은 이제 상대방 입장에 대한 탐색기를 지나 대안 조율 단계로 접어든 형국이다.
처음에는 재계가 정부에 맞대응하는 듯 비치기도 했으나 이내 꼬리를 내렸다. 아무래도 그들은 정부에 비해 힘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들은 서둘러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힌 데 이어 중소기업과의 상생 방안을 마련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를 놓고 역시 기업은 정부에 대해 ‘영원한 을(乙)’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상황이 바뀌더라도 재계가 약속한 내용을 제대로 지킬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기업에 대한 압박을 비판하는 건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대기업이 신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지적한 것은 난센스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들은 기업이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정부 주문 때문에 투자했다 어려움에 처하면 오히려 국민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항변한다. 나아가 정부가 ‘친서민’을 앞세워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며 얼굴을 붉힌다.
정부와 대기업은 왜 이처럼 서로 딴 곳을 바라보는 연인 같은 모습을 보일까. 기본적으로 정부는 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데 반해 기업은 이윤 추구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표로만 본다면 절대 다수인 서민과 중소기업 편을 드는 게 훨씬 남는 장사다. 정부 여당 입장에선 ‘친서민·중소기업’ 정책은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도 좋은 메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글로벌 경쟁을 헤쳐온 대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우리 경제의 바탕을 허무는 꼴이 된다.
시장주의자들은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마치 대기업 탓인 듯 몰고 가는 데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그들은 “세계시장에서 그야말로 ‘피 터지게’ 경쟁해서 얻은 과실을 중소기업 후린 결과로 폄훼한다면 대기업이 어떻게 의욕을 갖고 일하겠는가”라고 반박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협력업체와 불공정 거래를 하는 경우가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 유통 전자 분야 등이 그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보자. 대기업들은 항상 선(善)일까. 이에 대한 답은 안타깝게도 ‘노(NO)’다. 그들은 윤리경영을 내세우지만 아직도 만족스러운 상황에 다다르지 못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도 그렇다. 세계금융위기만 해도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몰고 온 한바탕 광풍이었다. 이처럼 기업 스스로 높은 도덕성을 갖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행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는 시장에 맡겨 두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중소기업이 상생하지 못하는 틀을 그대로 뒀다간 산업 생태계 자체가 파괴되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일종의 ‘시장 실패’인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보이는 손’이 약손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장의 효율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닌 것이다.
위의 예에서 보듯 ‘보이는 손’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만큼 보이는 손은 꼭 필요한 때에 제한적으로 내밀어야 한다. 이번의 경우 대·중소기업간 상생을 위한 진정한 계기가 마련된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 경제의 선순환 고리가 구축되는 셈이다.
정원교 편집국 부국장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