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피해자 찾아온 일본 크리스천 청년들 “할머니 생생한 증언에 가슴을 찌르는 통증”
입력 2010-08-05 17:36
“무언가가 마음을 찌르는 것 같다.”
일본에서 온 8명의 청년 중 여럿이 이 말을 했다. 지난달 30일부터 6일까지 1주일간 이들은 ‘마음을 찌르는 여행’을 하고 있다. 일본기독교단, 외국인등록법 문제를 생각하는 전국기독교연락협의회(외기협) 등 소속의 크리스천 청년 6명과 이들을 인솔한 목사 2명은 일본 시모노세키 항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다시 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일제시대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갔던 노동자들의 발자취를 거꾸로 되짚은 것이다.
이들은 3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그리고 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929회 수요시위 현장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광복절을 앞두고 주선한 이 여행은 올해가 세 번째인데, 이번에 온 청년 대부분은 작년과 재작년에도 참여했다.
3일 오후 나눔의집. 할머니들의 생활공간에 들어선 이들은 김화선(90) 할머니 주위에 다소곳이 앉았다. 바로 옆 배춘희(85) 할머니 주위에는 한국 청년들이 앉았다. 한국 청년들은 금세 할머니와 친해져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했다. 반면 일본 청년들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그럴 수밖에. 재일교포인 김경호(26)씨가 조심스럽게 한국어로 “재미있게 지내고 계신가요?” 하고 묻자 김 할머니는 일본어로 “재미있을 게 뭐가 있겠어. 전쟁이 없었으면 마음 아플 일도 없고, 여기(나눔의집)도 없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라고 했다. 이어서 “일본사람들은 나빠. (죄를) 인정도 하지 않고 배상도 안 하잖아. 사죄 안 하면 그냥 이렇게 하나씩 죽어가는 거지”라고 하자 청년들의 표정은 한층 진지해졌다.
그럼에도 김 할머니는 멀리서 찾아온 젊은이들을 따뜻하게 대했다. 앉아 있기가 힘든지 숨을 몰아쉬면서도 질문마다 다정하게 답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헤어질 때는 일일이 손을 잡았다. “저 여기 세 번째 왔어요” 하는 청년에게는 “뭣 하러 자꾸 와, 바쁜데” 하면서도 “다음에 또 보자”고 했다.
생활관을 나오면서 일본기독교단 기보가오카교회 미주시마 쇼코(33·여) 부목사는 눈물을 보였다. “다시 방문할 때까지 살아계실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같은 여성으로서 정신대 할머니들의 삶이 더욱 안타깝다는 미주시마 부목사는 “살아계실 때 들은 할머니의 육성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했다.
청년들에게는 각기 여행에 참여한 이유가 있었다. 일본성공회 오사카 교구 신자인 아사미 유리에(27·여)씨는 자신이 일하는 복지단체에서 만나는 재일교포 할머니들에게서 늘 일제시대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그분들에게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더라고요. 또 제 증조할아버지께서 1900년대 초 한국에서 철도 놓는 일을 하셨다는데 가해자의 한 사람이 아닐까 늘 생각했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고요.”
일본기독교단 신학교에서 한·일관계사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마츠야마 겐사쿠(25)씨는 “고교 때부터 한·일관계에 흥미가 있었는데, 일본성공회가 연 한·일 역사 세미나에 참석한 뒤 신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냐고 묻자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인의 양심’이라고 할까”라고 답했다.
일행 중 가장 어린 마나코 요시히토(23)씨는 “한국 청년들과 교류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적 현장을 방문해 아픔과 슬픔 안에서도 활동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을 찌르는 통증과 감격을 느낀다”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외기협 자원봉사자로서 인솔 책임자이기도 한 김경호씨는 4년 전 한국에 유학왔을 때 이곳 나눔의집과 소록도, 광주 5·18 묘역 등 역사적 장소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고. 나눔의집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다. “1930년 일본에 노동자로 끌려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할 때나, 한국 이름으로 일본에서 살고 있는 저를 자각할 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어려운 문제여서 역사의 현장을 직접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은 “정신대 할머니의 아픔은 일본이 저지른 ‘죄’ 때문이며 일본 정부는 정당하게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외면할 수도 무관심할 수도 있는 역사, 찌르는 아픔을 주는 역사인데도 이 청년들이 이처럼 가까이 다가서려 하는 이유는 뭘까. 재일교포인 일본기독교단 와세다교회 한수현(37) 목사는 “일본에서도 역사 책임에 민감한 기독교인은 상대적으로 소수”라고 전제하면서 “최소한 이 청년들은 아픈 이들의 편에 서려 한다는 점에서 용기 있는 기독교인들”이라고 말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