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말과 행동
입력 2010-08-05 17:31
20개월 된 외손녀 정인이의 말이 아주 급속도로 늘고 있다. 주변 어른들은 모두 이 아이가 35개월 된 오빠 정연이보다 말을 빨리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이 오빠가 선생님이다.
정인이는 오빠한테 맞거나 밀려 넘어지면서도 계속 오빠 주위를 맴돌면서 말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 들리는 말을 실제로 사용해 보려고 정인이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반대로 하기 시작한 오빠가 “안 먹을 거야” “내거 아니야” 하는 것을 들은 후에는 밥 먹을 시간이 될 때마다 “안 먹어” 하며 도리질을 하곤 한다. 아이 엄마는 “엄마, 이 애는 이상해. 안 먹는다면서 다 먹어” 했다. 그렇다. 정인이는 새로 들은 말을 실험해 보기 위해 ‘안’ ‘아니야’를 여기저기 붙여보면서 실험하고 있는 것이지 그 말과 연결된 행동의 의미까지 연결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배운 말과 연결되는 행동의 의미까지 파악하려면 수십 번의 실험과 시행착오가 있어야 하고 이런 상황을 유심히 관찰한 후 친절하게 도와주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 그런 어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내가 정인이를 안고 물 마시는 것을 도와줄 때였다. 나는 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물높이가 아이의 입과 수평이 되도록 붙잡아주고 있었는데 정인이는 내 손을 계속 아래로 밀며 “빼, 빼” 하였다. “정인아. 뭐를 뺄까?” 해도 아이는 계속 힘을 힘껏 주어 내 손을 아래로 밀며 “이거 빼” 했다. 순간적으로 난 판단을 해야 했다. 계속 컵을 잡고 있으면서 옷을 적시지 않게 할지, 정인이 혼자 물을 마시며 옷을 적시게 할지를 말이다. 난 후자를 택했다. 아주 좋은 교육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정인아. 할머니 손뗀다. 네가 컵을 꼭 잡아” 하며 아이의 두 손이 컵을 잘 감싸 잡도록 도와주며 손을 뗐다.
물론 정인이는 컵을 위로 쳐들어 옷을 다 적셨다. 하지만 “빼”라는 말 대신 “손을 뗀다”는 말을 행동과 연결해 배울 기회를 가진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를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모든 어른이 아이가 새로 배우는 말을 도와주기보다는 그 아이가 쏟은 물, 그 물로 적셔진 옷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법석을 떨곤 한다는 것이었다. “아유 쏟아졌잖아. 누가 너보고 컵으로 물마시라고 했어?” “빨리 와 옷 갈아입자” 등의 말은 하지만 그 아이가 왜 컵을 자기 힘으로 움직이려 했는지는 주목하지 않는다. 이는 아이를 불완전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모태에서 지으신 존재로서,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 있고, 양육에 따라 신성이 피어날 존재로 본다면 어른들의 대응은 달라질 것이다.
아이에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그 아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동기를 파악해서 알맞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야 말의 의미까지 파악하며 배울 수 있다.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해서 어린 시기부터 학습지를 시키고 어른이 하는 말을 따라하게 하며 주입식으로 시키는 것은 공부도 아니다. 도리어 학습을 두려워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원영<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