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핀 꽃은 나무가 쓴 한편의 시… ‘참새’
입력 2010-08-05 14:33
참새/정호승/처음주니어
좋은 동시집을 만나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무덥고 지친 날 일수록 좋은 동시는 진가를 발휘한다. 어떤 구절에서는 고향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 그늘이 떠오르거나 예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사물들이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꽃이 나를 바라봅니다/나도 꽃을 바라봅니다/꽃이 나를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나도 꽃을 보고 웃음을 띄웁니다//아침부터 햇살이 눈부십니다//꽃은 아마/내가 꽃인 줄 아나 봅니다”(‘꽃과 나’)
시인은 꽃을 보고 있고 꽃도 시인을 보고 있다. 시인도 꽃이고 시도 꽃이다. 세상 모든 것이 꽃이다, 라는 생각이 이 동시에 들어 있다. 이제 시인의 시선은 나무로 옮겨간다. “사람들은 나무의 그림자를/마구 밟고 다닌다/나무는 그림자가 밟힐 때마다/온몸에 멍이 들어도/동상에 걸린 발을/젖가슴에 품어 주던 어머니처럼/사람들의 발을/기꺼이 껴안아 준다”(‘나무의 마음’)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무 그늘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에게 늘 미안하고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살아있는 동시다. 세상이 척박할수록 사람들은 꽃이나 나무 등 자연에 기대어 위안을 얻는다. 세상은 냉혹하여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너무도 많다. 속상한 마음에 시인은 우는 날이 많아진다. “민들레는 왜/보도블록 틈 사이에 끼여/피어날 때가 많을까//나는 왜/아파트 뒷길/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우는 날이 많을까”(‘민들레’)
민들레는 하필 좋은 땅을 놔두고 메마른 보도블록 틈 사이에서 피어나는 걸까. 사람이 사는 까닭이 또한 보도블록 사이에서 피어난 노란 민들레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인은 눈치챈다. 이렇듯 동시는 몸의 배고픔을 채워줄 수는 없으나 마음을 위로하는 밥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라고 외쳤던 정호승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봄이 오면 나무에 왜 꽃이 필까요? 그건 바로 나무가 시인이기 때문이에요. 겨우내 추워서 떨던 나무가 봄이 오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생각과 말을 꽃으로 나타낸 거예요. 저는 나무에 핀 꽃을 나무가 쓴 시라고 생각해요.” 그가 책머리에 쓴 이 글은 동시집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두고두고 기억될 선물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