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갈등에 ‘이란’ 까지… 한국외교, 중동서 길을 잃다
입력 2010-08-04 18:28
한국 외교가 중동에서 길을 잃고 있다.
리비아에 장기 구금돼 있는 구모 선교사와 사업가 전모씨 등이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4일 현재까지도 외교통상부에 정확한 정보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국가정보원 요원의 현지 정보활동으로 촉발된 외교 마찰로 리비아 정부가 우리 정부의 영사접근 권한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민 보호 의무를 지는 정부도 답답하겠지만, 억류자 가족의 심정은 참담한 지경일 것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국정원만 바라보고 있고, 국정원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상태다.
중동에서 영향력이 큰 이란과의 경제 교류도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로버트 아이혼 미국 대북한·이란 제재조정관은 방한 기간 유럽연합(EU) 수준으로 이란 제재에 동참하도록 당부하고 3일 일본으로 떠났다. EU 수준의 제재는 무기 수출 등 군사적 교류는 물론 원유·금융 등 순수경제활동까지 포함해 사실상의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건설사를 중심으로 한 이란 진출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별로 없어 보인다.
중동에서 우리 외교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것은 외교뿐 아니라 경제교류, 사회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자원외교, 경제중심외교로 굳어지고 있는 ‘한국인=경제동물’이라는 이미지가 작은 일도 크게 증폭시키고 있다. 리비아의 경우 국정원 요원의 행동이 발단이 됐지만, 외교 마찰로까지 비화된 데는 중동권에 대한 인식부족이 자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민감한 정보를 캐는 임무를 띠고 파견된 정보요원은 현지 언어와 문화에 익숙지 못했다. 국가 정보기관인 국정원조차 리비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평소 중동 지도자에 대해 서방 입장에서 기술해 온 한국 매체와 교과서도 갈등을 부추겼다. 이해 부족의 결과는 곧바로 현지에 나가 있는 우리 기업에 영향을 미쳤다. 줄줄이 소환 받아 리비아 당국의 조사를 받았고, 영사업무가 중단돼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이란과 관계가 단절될 경우 한국은 연간 100억 달러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서방권의 이란 제재에 한국이 동참할 경우 중동권 전체에 반한 정서가 확대될 수 있다. 미국이 특별법까지 만들어 드라이브를 걸고, EU가 이에 호응하는 형국이어서 우리 정부가 외면할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평소 중동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선린외교를 펼쳤다면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로 이란은 2005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 결의안에 한국이 찬성했다는 이유로 한국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역제재를 감행한 바 있다. 당시 중동권에 대한 외교 정책의 전반적 재검토 요구가 있었지만 5년이 지난 현재 개선된 것을 아무것도 없다는 평가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