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란 ‘금융채찍’ 냉가슴… 동참땐 우리 기업 피해

입력 2010-08-04 21:34

정부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북한·이란 제재 조정관이 기획재정부를 다녀간 뒤부터다.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 이란 제재에 동참했을 때 국내 기업과 은행 등이 입을 막대한 피해 사이에 정부의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을 찾았던 아인혼 조정관 일행은 북한보다는 이란 제재에 무게를 더 둔 행보를 보였다. 특히 이란의 아시아 금융허브 격인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을 제재하는 문제를 놓고 얘기가 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멜라트은행 국내지점의 자산을 동결해 금융거래 자체를 막는 방안 등이 포함됐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부터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을 대상으로 종합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4년마다 실시하는 정기 검사라고 말하지만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예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불법성 여부 조사에 이렇게 긴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시점이 미국이 이란 제재를 본격화하는 것과 맞물려 제재 흐름으로 가닥을 잡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정부는 섣불리 미국 편에 설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멜라트은행을 제재할 경우 이란 정부가 우리 기업과 거래를 끊을 것이고, 상당한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이란에 수출한 금액은 40억달러다. 국내 기업 2000여곳이 이란과 거래를 맺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금융제재에 들어가면 이란 정부가 한국제품 수입 금지 등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면 죽어나는 건 우리 기업”이라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청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천안함 사건 등에서 미국과의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현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공공연히 한·미 FTA 수정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란 관련 태스크포스(TF)에서 심도 있는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미국의 이란 제재법은 지난달 1일 발효됐지만 시행 세칙은 오는 10월쯤 발표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제재수단이 2개월 뒤에나 나오기 때문에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외환 결제 방법 다변화, 원유 수입 대체라인 파악, 이란으로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결제난 해결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