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학원 “학교이전”-마을주민 “생태보존”… 자연숲 ‘성미산’ 개발 놓고 수년째 평행선 대치

입력 2010-08-04 18:24


서울 마포구의 유일한 자연숲인 성미산 남쪽 자락으로 학교를 옮기려는 홍익학원과 이를 막으려는 주민 사이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환경’과 ‘개발’ 논리가 맞부딪히는 상징적 지역이다. 주민들은 학교 이전 공사로 아름드리나무들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당장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홍익학원은 학생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이전하려는 것인데 주민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몽니를 부린다고 주장한다.

◇평행선 달리는 성미산 사태=4일 성미산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홍익학원의 학교 이전 공사에 강한 반대의 뜻을 표시했다. 권모(68) 할머니는 “얼마 전 공사 현장에서 내 두 팔로 안지도 못할 만큼 큰 아카시아나무가 베이는 걸 봤다”며 “이렇게 조금씩 훼손되다가는 산 전체가 파괴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모(42)씨 역시 “아이들이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성미산인데 그런 숲을 헐어버리는 걸 보니 정말 화가 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들은 성미산과 어우러진 공동체 문화가 훼손되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주민들은 그동안 성미산을 중심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친환경 먹을거리를 공유하기 위해 반찬가게를 여는 등 각별한 공동체를 만들어왔다.

학교 이전 공사가 진행되면서 아이들의 놀이터인 성미산 산림이 훼손되는 것을 주민들은 가장 걱정하고 있다. 교통량 증가로 학생들의 등하굣길이 위험해질 것이란 우려도 크다.

반면 홍익학원은 서울 상수동 홍익대 캠퍼스 옆에 나란히 위치한 홍대부속초교와 홍대부속여중·고의 열악한 교육 환경을 이전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학교 인근에 운집한 유흥업소 때문에 빚어지는 비교육적 환경, 40년 넘은 낡은 건물 등을 볼 때 이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홍대부속여고 서정화(64) 교장은 “초등학교 정문에서 30m쯤 떨어진 곳에 콘돔 가게가 있을 정도로 교육 환경이 나쁘다”며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환경 보호라는 미명으로 막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미산 사태 언제까지 이어질까=그간 홍익학원의 학교 이전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2005년부터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등에 학교 이전에 필요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하지만 지난 3일 마포구가 공사 현장 주변에 건설용 중장비가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도로점용 허가’ 결정을 유보키로 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홍익학원은 지난 5월 공사를 시작했지만 도로점용 허가가 나지 않아 그간 벌목 등 소규모 작업만 해왔다.

마포구 관계자는 “주민과 홍익학원 간 입장차가 너무 커 성급하게 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홍익학원은 합법적 절차를 거의 다 밟았는데 마포구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반발했다.

마포구가 홍익학원에 도로점용 허가를 내주더라도 문제가 모두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성미산주민대책위원회는 도시계획위원회 승인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인 홍익대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하며 국토해양부를 상대로 주민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이달 중 열릴 예정인 감사청구심의위원회에서 감사 시행 여부가 결정된다. 감사 결과 대책위 입장이 받아들여지면 홍익학원은 승인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