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청와대는 해결처”

입력 2010-08-04 17:53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대통령 비서실은 권력의 심장부다. 그 조직을 통할·지휘하는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최고 참모로서 국정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에선 부통령, 우리나라의 경우 총리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하곤 한다. 비서실장은 당연히 여러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맡게 된다.

미국 제럴드 포드 대통령 때 비서실장을 지낸 로널드 럼스펠드는 비서실장이 갖춰야 할 덕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통령에게 소신껏 날카롭게 짖어댈 수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아니오, 혹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기민함과 정직함이 필요하며,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철학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는 지도력이 요구된다”(함성득의 ‘대통령 비서실장론’)

미국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가 정책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은 요즘 너무 설친다는 이유로 ‘공공의 적’이 됐다. 집권 민주당 의원들까지 “그는 오로지 오바마 대통령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표 계산을 하고 있으며 이민개혁, 자유무역협정 등을 모두 가로막고 있다”고 이매뉴얼을 성토한다.

우리나라 역대 비서실장들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박정희 정부에서 39세 때 비서실 총책임자가 돼 5년 10개월간 재임한 이후락 실장의 경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소릴 들을 정도였다. 노태우 정부 때 노재봉 실장, 김영삼 정부 때 박관용·김광일 실장, 김대중 정부 때 김중권·박지원 실장도 비교적 힘이 셌다.

이명박 정부의 류우익·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조용한 편이었다. 특히 류 실장은 그림자 역할을 자임했다. 그는 “비서는 얼굴도 없고 입도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런데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이번 주 초, 취임 후 처음 가진 직원 조례에서 “청와대는 최종 책임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안 되며 무한책임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와대가 모든 문제의 귀착점이자 해결처가 돼야 한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실이 주요 정책 결정 및 조정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대통령실이 정책 조정에 앞장서면 그것이 주 임무인 국무총리실이 손을 놓을 가능성이 있다. 일은 열심히 하되 총리실이 할 일만큼은 남겨뒀으면 좋겠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