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심야 약국 연착륙하려면
입력 2010-08-04 20:43
정부와 대한약사회가 전국에 ‘심야 응급약국’과 ‘연중무휴 약국’을 지정, 지난달 19일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다. 야간 및 심야 시간대와 공휴일 긴급 상황 시 의약품을 구하지 못해 겪는 국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지역 내 약국은 공휴일 및 야간 시간에 당번을 정해 자율적으로 운영해 왔으나, 당번 약국을 찾기 어렵다는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특히 관심 가는 것이 ‘심야 응급약국’이다. 약사회는 24시간 또는 새벽 6시까지 문을 여는 이른바 레드 마크(51곳), 새벽 2시까지 여는 블루 마크(30곳) 약국 등 모두 81곳의 심야 응급약국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또 심야 응급약국을 운영하기 어려운 지역은 각 지역 약사회관(또는 공공기관)에 심야 응급약 취급소를 개설해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운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범 운영 후 보름을 넘긴 지금, 심야 응급약국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정부와 약사회는 국민의 약 구입에 따른 불편을 덜어주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약국들의 저조한 참여와 대국민 홍보 및 준비 부족으로 벌써부터 제도 운영에 회의적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우선, 참여 약국 수가 너무 적다. 약사회는 시범사업 기간 중 정확한 데이터 공개를 거부하고 있지만 한 의약전문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현재 전국 56곳이 심야 응급약국(심야 응급약취급소 3곳 포함)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3월 현재 전국 약국이 2만1036곳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당초 약사회가 약속한 81곳에도 훨씬 못 미친다. 게다가 심야 응급약 취급소의 경우 경찰 등 공공기관과 협조도 안 돼 운영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 예로 영등포시장역 인근 치안센터에 운영키로 했던 심야 응급약취급소는 경찰청과 사전 협조가 안 됐다는 이유로 개소 하루 만에 지정이 취소됐다.
지역 간 불균등도 문제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을 제외하면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 등 주요 대도시에도 많아야 2∼3곳의 심야 응급약국이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강원도에는 단 한 곳도 없다. 현재 참여 중인 심야 응급약국의 상당수도 지역 약사회 임원과 일부 약사들의 ‘봉사’로 운영되는 형편이다. 이래서야 당초 취지대로 국민의 편의를 제대로 보장할 수 있겠는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현 상황으로 보자면 환자가 심야에 약을 구하러 헤매고 다녀야 하는 것은 시범사업 전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는 게 훨씬 편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약사회가 앞으로 시범 사업을 통해 참여 약국을 점차 늘려간다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야간 및 심야 시간대 영업을 통해 수익이 보전되지 않는데다 별다른 지원책도 없는 상황에서 일선 약국들의 자발적 동참을 이끌어 내기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참여 약국들조차 “취지는 동감하지만 새벽 2시 넘어서 찾는 환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별도의 지원도 없이 응급약국을 꾸리긴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 실정이다.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은 약사회가 일반 의약품(대중약)의 슈퍼마켓, 편의점 등 약국 외 판매 허용을 막기 위해 심야 응급약국 시행을 서두른 탓일 수 있다. 일선 약국들과 사전 공감대 형성 및 조율, 공공기관과 협의 등 충분한 준비가 필요한데,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 결과 실효성이 의심되는 심야 응급약국제를 조산(早産)하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당국 역시 약사회의 이 같은 흑심(?)을 알고도 눈 감아준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심야 응급약국 운영은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면 철저히 준비해 제대로 운영하는 게 마땅하다. 정부와 약사회는 지금이라도 심야 응급약국에 대한 실태 점검과 함께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지원 및 관리책을 내놓아, 보다 많은 약국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야 한다.
민태원 문화과학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