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의 내가 만난 하나님(10) 이어령

입력 2010-08-04 15:46


아! 이어령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스무 살 적에 처음 뵈었습니다. 연구실로 불쑥 찾아간 어린 학생을 늘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저는 늘 질문을 드렸고, 그럴 때마다 기꺼이 소상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공짜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아니죠. 자장면까지 사주시면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책을 읽다가 막히면 찾아뵈었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막혀서 답답하던 머리와 가슴을 뚫어주셨습니다. 한번도 제 기대에 실망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제게 그분은 그때부터 석학이셨습니다. 박학다식 그 자체셨으니까요. 게다가, 그분은 타고난 선생님이시죠. 질문에 대하여 적당히 설명하시는 일은 그분 사전에는 아예 없었습니다. 언제나 열강을 하셨습니다. 불쑥 찾아와 엉뚱한 질문을 드리는 ‘이상한’ 학생 한 명을 향한 열강을 상상할 수 있으신지요. 당연히 학생이었던 제게는 황홀한 추억입니다.

벌써 10년도 더 되었습니다. 그분이 정년퇴직을 하셨습니다. 저는 제도가 가지는 답답함을 비웃었습니다. 그분은 결코 정년이 있을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정년퇴직하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손실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년퇴직 이후, 그분은 특정한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셔서, 더욱 큰 날개를 달고 훨훨 날고 계신 것이 그 반증일 것입니다. 시인 이상이 그렇게 간절히 소망했던 날고 싶은 꿈을 이루신 셈입니다. 그리하여 자유로운 영토에서 말로 글로, 아니 장르를 뛰어넘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고 계시니까요.

저는 그분이 정년퇴직을 하셨을 때, 그분 내외분을 모셔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평생 공짜로 공부한 최소한의 예의였습니다. 그리고 또 습관처럼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찾아뵙고 질문을 드릴 때마다 참으로 열강을 해주셨는데,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문답이 학문의 기본이에요. 그리고 늘 좋은 질문을 해서 참 좋았어요.” “덕분에 저는 매우 효율적으로 공부를 했구요.” “나도 똑같에요. 김종찬 씨가 질문을 할 때마다 내 지식이나 생각을 좀더 명확하게, 좀더 깊고 넓게 확대할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방송을 할 때에도, 제 프로그램 출연은 1순위 아니 0순위로 생각해 주셨습니다. 다른 프로그램 출연은 사양하시던 때에도, 제 프로그램만은 예외로 기꺼이 출연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그분을 멘토로 모시고 살던 제가 그분을 피하고 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부끄러워서도 그랬습니다만, 지워버릴 수 없는 흠이 생긴 제가 그분 근처에 있는 것이 행여 그분에게 누가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그랬는데, 어떤 장소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이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석고처럼 굳어지는 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무 일도 모른다는 듯이, 제게로 다가오셔서, 왜 그렇게 연락이 없었냐며,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나쁜 짓을 저질렀고, 제가 선생님 가까이에 있으면 선생님께도 누가 되니 잊으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정치적으로 당했다는 거 다 아는데 무슨 소리냐며, 연락할 테니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별 수 없이 전화번호를 드렸고, 며칠 뒤 곧바로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 모임 저 모임으로 자꾸 불러내셨습니다. 달팽이가 되어있는 제 껍데기를 벗겨주시려던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럼에도 저는 과거의 저와 작별하기로 결단하였으므로, 늘 그림자처럼 움직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분이 부르시면 나갔지만, 되도록 먼발치에서 그림자처럼 서있다가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날이었습니다. 주보를 보니, 제가 출석하는 100주년교회에 그분이 특별강연을 하기 위하여 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튿날, 그분의 비서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의 수준과 성향, 연령층 등을 알려드려 강연하시는 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분이 막 세례를 받으신 뒤였습니다. 제 전화와 무관하게 교우들 모두가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만약 종교생활을 하게 된다면 기독교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던 그대로, 그분이 참다운 크리스천의 모습으로 교우들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저는 100주년교회의 양화진문화원에서 그분을 명예원장으로 모시고 목요강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40여년이나 멘토로 모신 분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게 되고, 함께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섭리로구나, 생각했습니다. 제 부끄러움, 제 흠까지도 기꺼이 감싸주시고 털어주시는 그분, 모르는 분들은 까다롭고 그래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분인 줄로 자주 오해받는 그분에게서 저는 남의 험담이나 비난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비평문은 비수처럼 예리하지만, 삶은 아이를 감싸는 강보처럼 포근하지요.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를 부르시어 품에 안으신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이어령 선생님입니다. 제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에는 너무도 모자라는 사람입니다만, 저는 그분에게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법을 배운 것에 감사드립니다. 읽고 쓰고 말하는 법을 배운 것에도 감사드립니다. 그분에게서 이런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면, 오늘 이 순간도 하나님의 언저리나 맴돌고 있는 불쌍한 처지에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분은 저를 가리켜 믿음의 선배라고 하시는데, 사실이 아님을 이 글을 통해서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먼저 된 것이 나중에 된 것이요, 나중에 된 것이 먼저 된 것이라는 말씀이 이에 닿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분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저는 눈멀고 귀먹은 채로 어두운 밤을 아직도 헤매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신창이가 되었을망정 이렇게라도 어둠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분의 가르침 덕분이었음에 감사드리며, 그분과 함께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계속).

8월 3일 김종찬(전 KBS 집중토론 사회자, ‘희망의 소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