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 제2금융권 금리 내리자… 서민들 되레 사채시장 내몰린다

입력 2010-08-04 00:38


정부의 서민대출 확대 드라이브에 금융시장이 뒤틀리고 있다. 정부의 팔 비틀기식 제2금융권 금리인하 공세로 되레 서민들이 대부업과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것이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희망홀씨 대출’ 등 서민금융 상품은 재원 한계 등으로 벽에 부닥치고 있다. 자생적으로 확립된 금융 권역별 피라미드에 정부가 전방위로 개입하면서 금융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5월까지 중소기업 영업사원으로 일했던 김모(44)씨는 회사 부도 후 신용카드 모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신용등급 5등급에 한 달 평균 수당은 약 150만원. 지난주 두 아들 교육비와 생활비를 위해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시중은행에선 재직 및 소득증명이 없어서, 캐피털 업체에선 수입이 일정치 않다며 ‘퇴짜’를 맞았다. 저축은행에 햇살론을 문의했지만 신용등급이 6등급 이하가 아니어서 반려됐다. 그는 3일 결국 대부업체에서 연 38% 이자로 1000만원을 빌렸다.

반면 신용등급 6등급, 월급 200만원을 받는 정규직 영업관리원 이모(33)씨는 이날 서울의 A캐피털 업체에서 3년 만기 최고 1000만원에 금리 연 24%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시중은행을 찾으니 만기 1년 1000만원 신용대출 시 연 10.05%(6개월 변동금리)가 적용됐다.

신용등급이 더 높은 김씨가 대부업체로 밀려난 건 왜일까. 제2금융권이 금리를 낮추면서 대출기준을 깐깐하게 바꿔 서민 대출 문이 되레 좁아진 데다 정부의 서민금융상품에서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캐피털 업계의 고금리 대출 행태를 질책한 이후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캐피털 업체들은 대출 최고금리를 5∼7% 포인트가량 인하했다. 저축은행도 솔로몬저축은행이 ‘와이즈론’ 대출 최고금리를 5% 포인트 낮추기로 하는 등 금리 인하에 착수했다.

그런데 방향이 엇나갔다. 제2금융권은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 대신 우량 고객에게 대출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B저축은행 관계자는 “금리 인하는 은행과 제2금융권 사이에 놓인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조치”라며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폭은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은 서민 대상 ‘기획상품’은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단순 참고자료인 신용등급을 기준으로 서민 상품을 설계하면서 신용등급 중간계층인 ‘차상위계층’(5등급 수준)이 소외됐다. 희망홀씨 대출 가운데 신용보증기금이 특례보증을 서는 보증부 대출은 재원의 한계로 모든 취급기관에서 이미 마감됐다. 남은 건 기존 상품과 조건이 비슷한 신용대출뿐이다. 미소금융은 대출이 까다로워 7개월간 실적이 122억원에 불과했다. 햇살론은 급증하는 대출로 금융기관의 부실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홍익대 김종석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학계에서는 최근 정부 스탠스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캐피털 금리 문제의 경우 업체들의 경쟁을 촉진해 인하하는 것이 순리이지 경제 문제를 질타나 압력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