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 노인’ 만명시대… ‘복지 사각’에 방치 인력도 예산도 턱없다
입력 2010-08-03 21:48
서울 성현동의 한 임대아파트에 들어서자 역한 냄새가 났다. 박모(69) 할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모은 폐지 등이 썩는 냄새다. 그는 3년째 홀로 지내고 있다. 박 할아버지는 2007년 노모(老母)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지내다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지난해부터는 치매 증상까지 나타났다.
이웃들은 수차례 할아버지의 정신치료와 환경 개선을 동사무소에 요구했다. 하지만 동사무소는 묵묵부답이었다. 동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한 차례 사회복지사와 함께 찾아가 노인시설 입소를 권유했지만 박 할아버지가 원치 않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급기야 할아버지를 시설로 옮기기 위한 주민서명까지 받았다. 아파트 이웃 김모씨는 “혼자 계신 할아버지를 쫓아내기 위해 주민들이 서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윤모(80) 할머니는 서울 독산동의 16.5㎡ 남짓한 다세대주택에서 20년째 혼자 살고 있다. 10년 전 백내장이 찾아왔지만 돈이 없어 방치하다 최근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며느리가 초등학교 행정직원이란 이유로 기초생활수급권자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었다.
홀몸(독거)노인 10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홀몸노인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두 홀몸노인처럼 사실상 고립된 생활을 하는데도 이들을 지원하거나 구호할 복지시스템은 여전히 부실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각 지자체별로 홀몸노인 사례조사팀을 운영토록 했다. 사례조사팀은 복지부 사회복지통합관리망에 등록된 노인들 중 긴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파악하고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그러나 관악구청에는 박 할아버지 사례가 누락돼 있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사례조사팀 7명의 인력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을 다 찾아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는 노인들이 직접 찾아와서 지원신청을 하는 경우 외에 지자체에서 홀몸노인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란 지적을 낳고 있다. 돌아다니기조차 힘든 노인은 지자체가 먼저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시 홀몸노인 수는 19만9559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노인돌보미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1만7931명(11.1%)에 불과했다. 홀몸노인 10명 중 9명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서울시 전체 노인돌보미 수는 574명에 그쳐 돌보미 1명당 평균 31명을 담당하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해 현재로서는 사각지대에 놓인 홀몸노인을 찾기 위한 대책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특히 지자체들은 홀몸노인을 위해 책정된 예산조차 쓰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복지부는 가사도우미 지원 등 노인종합돌봄서비스 사업 예산으로 지난해 서울시 25개 구청에 총 37억원 가량을 책정했다. 그러나 본보 확인 결과 지난해 이들 구청에서 집행되지 않고 남은 돈은 7억5000여만원에 달했다. 이 돈은 홀몸노인 3464명에게 가사도우미 등을 월 27시간씩 1년간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서비스를 받는 도중 포기한 인원 등으로 예산이 남았다”고 말했다.
전웅빈 임세정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