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연숙] 공간에 대한 기억
입력 2010-08-03 17:48
사무실을 이전했다. 지난 6년을 보낸 곳을 떠난다는 아쉬움보다는 하필이면 덥고 습하고, 바쁠 때 이사를 해야 하나, 짜증과 자조가 먼저 생겨남은 어쩔 수 없었다. 이사라고는 하지만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 건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라 집으로 치면 방을 바꾼 것이나 한가지다.
이사를 한 지 거의 일주일이 지났지만, 사무실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부담스러움 속에 휴가를 맞은 후배에게는 사무실 정리는 걱정하지 말고, 휴가나 잘 다녀오라고, 호기있게 말했지만 사무실 문을 열 때마다 산더미 같은 서류를 보면 질릴 지경이다.
사무실을 옮긴 후에 겪는 몇 가지 변화들이 있다. 내가 일하는 기획실은 도서관 안쪽의 별도 공간으로 옮긴 덕에 조용한 가운데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도서관에서 각종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하지만 일부러 오가지 않으면 동료들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직원 한 명이 일부러 도서관까지 찾아와 삶은 옥수수를 주었다.
센터에는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는 헌책방이 한 곳 있다. 하지만 센터가 넓고 복잡하다 보니 사람들이 종종 길을 잃는다. 그들은 한참을 헤매다 안되면 도서관 안으로 와서 위치를 묻곤 하니, 기획실은 인포메이션 데스크 역할을 겸하게 됐다.
심호흡이 필요할 때면 도시를 내려다보며 세상이 내 것인 양 느꼈던 공간을 잃은 아쉬움도 크다. 얼마 전, 두고 온 물건들을 가지러 예전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텅 빈 사무실이 뜨거운 공기를 내 뿜었다. 며칠 사이에 공간은 사람 떠난 티를 물씬 낸다. 양면이 유리로 된 길이 100m 복도를 따라 건물 끝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대로 존재했다. 뜨거운 공기를 마시고 숨을 헉헉대며 걷다가 창가 기둥 옆 나의 옛 자리를 겨우 찾았다. 빈 자리를 보는 마음이 떠나온 집을 보는 마음과 흡사하다. 공간은 변함없는데 시간만 간 것 같다. 책상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많은 일들과 고민, 생각들이 허공에 둥둥 떠오르는 것만 같다.
지난 6년 동안 헤쳐 온 일,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환영처럼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순간적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또 다른 일상과 사연이 쌓이겠지 생각하니 다시금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물건을 되찾아 자리로 돌아오는 사이, 광장에 아이들이 많아졌다. 술래잡기에 한창이던 아이들은 이내 지겨워졌는지, 떠들며 뛰어다니는 데 열중한다. 그러다가 돌멩이를 집어 유리창에 던지기 시작한다. 유리는 늘 아이들의 파괴 본능을 유발하는 가 보다. 우리 어릴 적의 남자 아이들도 그랬으니까.
아이들을 저지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 사이 책을 고른 엄마들은 아이들과 광장을 가로질러 헌책방을 떠난다. 훗날 저 아이들은 저 광장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한참을 아이들과 엄마들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김연숙(출판도시문화재단 기획홍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