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고상두] 지속 불가능한 전쟁

입력 2010-08-03 17:49


네덜란드는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로 유명하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 간의 분쟁을 전쟁이 아닌 중재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아름다운 구상에서 생겨났다. 미국의 카네기는 이 구상을 지지하여 국제사법재판소가 들어설 ‘평화궁’ 건축자금을 기부하였다. 하지만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네덜란드가 나토 동맹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시작하였다. 캐나다와 폴란드도 철군을 결정하였고, 비교적 안전한 힌두쿠시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독일군도 무장반군의 공격 때문에 국내적으로 철군압력을 받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보다 재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철군이 이어질 전망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열강은 파죽지세로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였다. 유럽인의 침공에 대한 본토인의 저항은 거셌다. 하지만 전투에서 본토인이 5만 명 전사하면 첨단무기를 가진 유럽인은 500명 전사하는 꼴이었다. 기관총의 위력 앞에서 본토인은 전투의욕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군정에 실패한 미국의 현실

아프간 반군은 거의 맨발에 누더기를 걸치지만 현대식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1980년대 소련의 침공으로 10년간 싸우는 동안 미국 CIA의 무장 지원을 받았다. 당시 제공받았던 무기 중에서 소련의 산악용 공격헬기를 백발백중 명중시킨 스팅어 미사일이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식 무기와 오랜 전투경험으로 무장한 이슬람 반군이 이제 미군과 싸우고 있다.

전쟁은 명분싸움이다. 성공적인 전쟁은 현지주민의 환영을 받는 전쟁이다. 히틀러는 전 유럽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나치주의자들을 잘 활용하였다. 그가 짧은 기간에 유럽정복에 성공한 것은 나치당원 덕분이었다. 이들은 독일군이 침공하기 전에 자국의 정부를 충분히 흔들어 놓았다.

미국은 이슬람 주민의 심정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 직후 후세인 동상이 끌어내려질 때, 동유럽 국민들이 레닌 동상을 끌어내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라크 국민은 종파적·종족적 관점에서 후세인의 몰락을 환호하였던 것이지, 이슬람 근본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마음은 없었다. 미군은 이라크에서 전쟁이 끝난 후에 더 많이 전사하고 있다. 이것은 작전에는 성공하였지만 군정에서는 실패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이 테러리즘과 힘겨운 전쟁을 하고 있다. 자살특공대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고 있다. 테러리스트가 목숨을 던져 복수하는 행위는 영예로 생각되며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알카에다는 조직원들에게 서구인 400만명을 살해할 것을 요구한다. 서구인에 의해 죽은 무슬림의 수만큼만 복수하자는 것이다.

아프간 출구전략 바람직

테러리즘을 척결하는 방법은 관용이다. 워싱턴 장군은 영국군 포로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하여 독립전쟁에서 승리했다. 헤겔이 “아메리카는 세계사의 짐을 떠안을 미래의 땅”이라고 예언했는데, 미국이 현재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정책에서 실패하면 정권이 무너지지만, 대외정책에서 실패하면 나라가 무너질 수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이 과거 베트남 철군에 버금가는 역사적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네덜란드의 철군이 미국에게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출구전략에 명분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미국의 혈맹으로서 상호원조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하지만, 동시에 미국에게 아프간 철수를 조언할 필요도 있다. 수렁에 빠진 친구를 꺼내주는 것도 우정이다. 더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의 미군 병력이 묶여 있는 것은 한반도 안보에 바람직하지 않다.

고상두(연세 SERI EU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