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축구대표팀 ‘거미손’ 이운재 은퇴 선언
입력 2010-08-03 21:14
1994년 6월 28일 미국 댈러스 코튼볼 경기장. 한국은 미국월드컵 C조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인 독일과의 경기에서 전반에만 3골을 허용했다. 당시 김호 대표팀 감독은 3골을 내준 수문장 최인영 대신 경희대에 재학 중이던 21세의 앳된 이운재에게 후반 골문을 지키도록 명했다. 대표팀은 더 이상 골을 허용하지 않았고 2골을 만회하며 2대 3으로 아깝게 패했다. 2무1패로 예선탈락.
이후 16년 동안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문을 든든히 지키던 ‘거미손’ 이운재(37·수원 삼성·사진)가 3일 대표팀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운재는 이날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할 때다”며 “사람은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지금이 그 순간인 것 같다”고 은퇴의 변을 밝혔다. 이운재가 은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대한축구협회와 신임 조광래 대표팀 감독은 11일 치러지는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을 이운재의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고별 경기로 치르기로 했다.
이운재는 94년 3월 5일 미국과의 평가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후 통산 131경기에 출전해 113점을 실점했다. 나이지리아와의 고별 무대까지 합칠 경우 통산 132경기를 기록하게 된다. 135경기의 A매치 기록을 갖고 있는 홍명보 현 올림픽 대표팀 감독에 이어 두 번째 많은 A매치 출전 기록이다.
미국월드컵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이운재의 진가가 발휘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였다. 2001년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든 후 대표팀 부동의 수문장이 된 이운재는 이탈리아와의 16강전까지 단 2골만 허용하며 ‘거미손’으로 명성을 날렸다.
특히 4강 진출이 달린 스페인과의 8강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의 4번째 키커인 호아킨의 슛을 막아 한국의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당시 이운재와 승부차기 대결을 펼친 스페인 수문장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스페인 우승의 주역이자 야신상(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상)을 받은 이케르 카시야스(29·레알 마드리드)였다. 21세에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카시야스는 8강에서 이운재에게 밀리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운재는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전 골키퍼 장갑을 후배 정성룡(성남 일화)에게 물려주면서 서서히 대표팀 은퇴를 준비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