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1억1948만 달러 받아 설립된 포항제철… 징용자 복지 재단 등 지원책 마련 필요

입력 2010-08-03 21:59


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

제4부 국치 100년, 이젠 해법 찾아야

③ 한국과 일본,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1968년 6월 15일 새벽 4시, 비상 소집된 포항제철 건설요원들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막 솟아오르고, 현장 건설사무소 오른쪽 아래로는 영일만의 짙푸른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요원들에게 외쳤다. ‘우리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요.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 모두 저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회고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포항제철 건설 때의 비장한 각오와 결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박 명예회장 표현처럼 포항제철은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됐다. 1976년 당시 경제기획원이 작성한 ‘청구권 자금 사용백서’에 따르면 1965년 한일협정 타결 이후 포항제철에 들어간 청구권 자금은 모두 1억1948만 달러였다.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을 대신해 한국 정부가 받은 총 5억 달러의 돈 가운데 단일 사업으로 가장 많은 액수가 투입됐다. 포항제철은 그 ‘종자돈’을 토대로 지금 연 매출 30조원(2009년 기준)의 세계적 기업 포스코로 성장했다.

포스코의 설립 배경을 근거로 일제 강제동원 관련 피해자 단체와 전문가들은 “청구권 수혜 기업이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이미 2006년 8월 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청구권 수혜 10대 기업’을 발표했다. 포스코를 필두로 한국도로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외환은행, KT, KT&G,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상청 등이 포함됐다.

피해자 측은 가장 상징성이 큰 포스코를 집중 표적으로 삼아 위자료 청구소송 등 법적 투쟁을 벌여왔다. 이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지난 2월 26일 주주총회 자리에서 “정부에서 종합해 대응하는 게 효과적인 만큼, 정부 지원 방안이 마련되면 앞장서서 참여해 징용 피해자 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나 포스코 측에서 지원 방안을 내놓은 것은 전혀 없다.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 최봉태 변호사는 “포스코가 전혀 성의가 없다. 본인들이 이런 의사가 있으니까 정부에서 도와달라고 해야 맞지, 정부가 뭘 해야 움직이겠다는 건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인성 일제피해자총연합회 공동대표는 “정부가 포스코와 협의해 가을 회기쯤 국회에 피해자 후생복지 사업을 위한 재단 설립 법안을 제출하기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