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 인질범’ 자수 설득… 네고시에이터 김경옥 경장 “범죄 협상은 압력솥 김빼기”
입력 2010-08-02 23:30
인내력의 한계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인질범과의 전화통화는 벌써 61번째. 지난달 23일 오후 4시5분부터 시작된 인질극은 이미 자정을 넘겼다. 상황발생 8시간째였다. 인질극이 벌어진 서울 중화동 한 아파트 근처에서 지켜보던 주민들도 술렁였다. “살아서 내려오기는 틀린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때 인질범 박모(25)씨가 난데없는 제안을 했다. “여자친구가 타고 다니는 흰색 EF쏘나타 차량을 준비해 달라. 우리가 만난 지 300일 되는 날이다. 바다에 가고 싶다.”
서울경찰청 소속 김경옥(33·여·사진) 경장은 직감적으로 “뭔가 풀리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박씨는 여태 ”여자친구를 죽이고 자살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협상 전문가인 김 경장은 중랑경찰서 소속 경찰관들과 다시 회의를 했다. 인질범의 심경이 달라졌으니 전화통화를 할 때 좀 더 편안하게 유도하라고 조언했다.
다시 박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포자기하듯 말을 이었다. “바다가 아니면 한강이라도 가게 해 달라.” 또다시 전화가 왔다. “만난 지 300일 기념으로 둘이서 밥을 해먹고 싶으니 집에 가스를 넣어 달라.” 경찰은 인질범이 폭발시킬 것을 우려해 가스를 끊고 있었다. 박씨는 이후에도 10여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 새벽 1시20분쯤, 박씨는 전화로 “자수하겠다”고 말했다. 40분쯤 뒤 그는 엘리베이터 CCTV에 모습을 나타냈다. 9시간 넘게 이어진 ‘중화동 인질극’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김 경장과 중랑서 소속 경찰관 등 5명으로 구성된 협상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종일관 범인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안심시킨 ‘협상전략’의 승리였다. 협상팀은 박씨가 번번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애를 태웠다. 그러나 전화를 걸어 자수를 재촉하는 대신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다시 전화가 오면 침착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며 태도변화를 유도했다.
◇“범죄 협상은 압력밥솥의 김을 빼는 것”=2일 서울 내자동 서울청 과학수사계 사무실에서 김 경장을 만났다. 김 경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인질범이 무언가 요구한다는 것은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라며 “일이 잘 풀릴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김 경장은 ‘네고시에이터(Negotiator)’로 불리는 범죄협상 전문가다. 정식 직책은 ‘경찰 대테러 협상 실무요원’이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경기대 범죄심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경찰에서 전문가를 공채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시해 2005년 7월 제복을 입었다.
그는 중화동 “인질극에서 최악의 상황은 인질범이 자살하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다. 인질범을 자극하거나 억지로 제압하려 하면 나쁜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경장은 “범죄 협상은 압력밥솥의 김을 빼는 것과 같다”고 했다. 설득으로 인질범의 ‘심리적 폭발’을 막는 것이 범죄협상 전문가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한국형 네고시에이터 90여명 활동 중=김 경장과 같은 실무요원은 전국적으로 90여명이다. 이들은 테러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협상 전문가로 현장에 투입될 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1982년 처음 선발됐다. 하지만 테러 상황이 없어 빛을 발하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이들을 아동 납치, 인질극, 자살 시도 현장에 투입키로 방침을 정했다.
김 경장이 중화동 인질극 현장에 투입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경장은 “우리 같은 요원들이 좀 더 다양한 상황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체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됐으면 좋겠다”며 “이론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요원들을 상대로 상황별 역할극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340명, 호주는 200여명, 홍콩은 85명의 협상 전문가를 사건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 경찰본부 협상팀은 연 260여 차례 출동한다. 외국 네고시에이터의 활약은 영화로 소개돼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국내 범죄협상 전문가의 활약은 아직 생소한 게 현실이다. 김병구 경찰청 대테러센터장은 “전문성을 갖춘 요원을 그동안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이들을 일반 범죄현장에 적극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