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8月 3日 평화로 거룩한 일치를

입력 2010-08-02 18:56


● 찬송 327장(통 361장) ●에베소서 4장 1∼4절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 일에 쉼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구원은 점점 그 지평이 확장됩니다. 십자가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한 몸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는 일(엡 2:16)이요,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화목의 직분을 맡은 자(고후 5:18)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의 몸은 유기적인 공동체요, 한 분 성령은 함께 경험한 하나님의 실재이며, 한 소망은 구원을 바라는 모든 이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거룩한 일치를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한마디로 ‘평안의 매는 줄’로 묶어 사랑의 결속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 안에서 가능합니다. 우리는 구원이라는 같은 소망 가운데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질문

1. 바울이 권면하는 그리스도인의 다섯 가지 성품을 적어 봅시다.

2. ‘평안의 매는 줄’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화

저는 얼마 전에 영화 ‘크로싱’을 보았습니다. 이 영화가 마음을 울린 것은 그들의 탈북과정에서 온갖 고난을 이겨 낸 인간승리 때문이 아닙니다. 현장고발을 통해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되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저는 그들을 통해 위기에 처한 구체적인 한 인간의 삶을 보았고, 무너져 가는 생생한 가정의 현실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민족, 평화, 통일과 같은 단어에서 느끼지 못했던 그런 체온을 그들이 처한 ‘인간의 조건’ 속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영화 ‘크로싱’은 이러한 이야기를 한국교회와 무심한 우리를 향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준비 작업을 위해 탈북자들이 먼저 온 것 같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체제와 이념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제가 만났던 북한교회 지도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한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다 회개해야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다 죽고 나면 도와줘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이제 우리가 손을 내밀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생생한 진실입니다.



◇질문(적용)

1. 만약 일치를 이루어야 할 사람과 거리낌이 있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2. 원수와도 일치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성품을 지녀야 합니까?



◇기도

1. 먼저 내게 평화의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2. 교회가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천하는 하나의 몸이 되게 하옵소서.

3. 우리 곁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과 편견의 담을 헐고 사랑으로 일치하게 하옵소서.

신경하 목사(기감 전 감독회장 상임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