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성기철] 이승만 기념관도 만들자

입력 2010-08-02 17:53


미국에는 전직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물이 도처에 있다. 수도 워싱턴의 한복판에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뜻을 담은 169m 높이 워싱턴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인근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둘은 워싱턴의 상징물이자 세계인의 관광 명소다.

미국에는 대통령 기념관이 참 많다. 1930년대 이후 재임한 대통령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기념관을 갖고 있다. 주로 자신의 고향에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링컨 기념관처럼 업적 칭송 일색으로 돼 있는 것도 아니다. 공(功)과 과(過)를 함께 전시하곤 한다. 예를 들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하차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 기념관에는 워터게이트 관련 포스터를 대문짝만하게 전시해 놨다. 빌 클린턴 대통령 기념관에는 르윈스키와의 스캔들 자료가 전시돼 있다.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 활기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대통령을 10명이나 배출했으니 번듯한 기념관이 여기저기 세워질 때도 됐다. 정부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박정희·김대중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 계획을 승인, 의결했다. 이로써 두 대통령 기념사업에는 각각 174억원과 15억원의 정부 예산을 쓸 수 있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 제안으로 시작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이제 속도를 낼 채비다. 박 대통령 기념사업회는 지금까지 국민모금으로 420억원을 모았고, 곧 80억원을 추가 모금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지원금도 확정됐으니 머지않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제법 근사한 기념관이 들어설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세대에 기증한 ‘김대중 도서관’이 기념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경남 거제시가 지난 6월 김 대통령 생가에 기록전시관을 세웠으니 기념관의 기초가 마련된 셈이다. 윤보선 대통령 기념사업회도 충남 아산 생가를 보수해 자그마한 기념관을 만들어 놨다.

여러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해서는 깜깜 무소식이어서 안타깝다. 사단법인인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가 결성돼 있고, 정부가 올해 예산에 30억원을 책정해 놨으나 현재 진행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대통령의 족적으론 사저로 쓰던 서울 이화장, 별장으로 사용된 제주도 화락관과 강원도 화진포 전시관이 있으나 초라해서 보기에 딱하다.

빛과 그늘이 크게 교차하지만 이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인임엔 틀림없다. 박 대통령 이상으로 공과가 뚜렷하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쳤으며 해방정국에선 민주정부를 수립했다. 6·25 국난도 잘 극복했다. 이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세계 최강국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청렴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다. 그늘을 보자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데다 장기집권을 고집하고 독재를 자행한 대가로 말년을 비참하게 보내야 했다. 4·19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그는 이국땅 하와이에서 5년간 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건국 지도자 功過 함께 전시를

이제 그가 대통령 직을 그만둔 지 50년, 별세한 지 45년이나 됐다. 아직 이 대통령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회통합, 국민화합 차원에서 그를 재평가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역사 속 인물이 된 지 오래지 않은가. 재평가의 일환으로 제대로 된 기념관 하나 지어보면 어떨까. 박정희 대통령처럼 기념사업회 주도로 국민모금을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정부도 예산을 충분히 뒷받침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기념관에다 그의 아킬레스건인 독재 권력의 흔적을 고스란히 전시해도 상관없을 게다. 닉슨이나 클린턴 기념관처럼.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