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변화-개그맨 서인석] 방황은 이제 그만… 다문화 가정 돕기 전력

입력 2010-08-02 20:22


한때 그는 브라운관에서 ‘국민보호당’의 국회의원이었다. 재벌당 소속이었던 그는 최양락 이봉원씨 등과 함께 정치개그로 1992년 정치 세태를 코믹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브라운관 뒤편의 삶은 화려하지 못했다. 냉면 사업이 실패했고 가정도 깨졌다. 한 순간 실수로 필리핀으로까지 도피했다. 그러다 자진 출두해 구속된 후 집행유예로 보호감찰을 받고 있다. 개그맨 서인석(48)씨 이야기다.

“믿어지진 않겠지만 필리핀에서 2년간 노숙 생활을 했어요. 한 순간 유혹에 깜빡 실수를 했습니다.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무서워서 무턱대고 도망을 갔습니다. 필리핀 시골로 들어가 낮엔 일하고 밤에는 길거리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바닥까지 간 거죠. 최악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출석했던 신앙인이다. 아주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0년 KBS 개그맨 공채 6기로 선발돼 KBS 신인무대 대상, 대학개그콘테스트 금상, 코미디대상 신인상, SBS 창사 공로상 등을 거머쥐면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큰 ‘우산’과도 같았던 김형곤 양종철씨의 사망은 그의 코미디 인생을 흔들어 놨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삶의 끈을 놓으니 개그 스타에서 삽시간에 필리핀의 외국인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다.

“하나님께 반항을 한 거죠. 필리핀에선 500원이면 한 끼 식사가 가능해요. 날씨가 따뜻하다 보니 잠자는 건 걱정이 없었고 비 올 때가 문제였죠. 계단 밑에서 잘 때도 있었고…. 어느 날 마닐라 베이 부랑자들의 집합소에서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붉은 태양이 수평선 위로 올라오는 겁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평소 절 도와주셨던 목사님이 보고 싶어지더군요.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다짐을 하고 항공료를 빌려 한국에 와 자수했습니다.”

그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운 이들은 필리핀 현지 교인들과 백성기 목사였다. 백 목사는 90년대 그의 매니저였다. 가수 민혜경씨의 오빠이기도 한 백 목사는 그에게 다문화가정 돕기라는 ‘미션’을 줬다.

“45일간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매일 반성문을 쓰고 성경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내가 출소하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수십 번, 수백 번 고민했습니다.”

그는 2년간의 필리핀 도피생활 중 한국-필리핀 혼혈아를 지칭하는 코피노의 생활이 어떤지 직접 목격했다.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덕택에 필리핀 다문화가정 사역이 다른 사람에 비해 수월한 편이다. 지난달 27일부터 5박6일간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강화도까지 진행된 ‘다문화가정 사랑의 국토순례’ 단장을 맡은 것도 그런 취지에서 시작됐다.

“예수님은 참 변화무쌍한 분이세요. 아주 여러 형태로 다가오세요. 항상 제 곁에 계셨는데 그동안 제가 그걸 못 느꼈을 뿐이죠. 지금까지 인생을 뒤돌아보니 ‘저를 다문화가정 아동을 위한 사역에 쓰시려고 여러 시련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토순례는 뉘우침의 순례였어요.”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서씨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필리핀으로 도망한 후 아직까지 두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요. 이제는 떳떳한 아빠가 되어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싶어요. ‘얘들아, 군 복무 열심히 하고… 아직까진 아빠가 부끄럽지만 다시 회복하고 준비해 돌아갈게. 그땐 이 아빠를 용서해주렴.’”

지금껏 살아온 서씨의 눈물에 진지함과 진심이 진하게 느껴졌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