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64)
입력 2010-08-02 09:46
퇴계동 이발사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가 있었다. 옛날 경무대 근방에 있었다던 가상의 이발소다. 대통령만 드나들던, 대통령 전속 이발소다. 그런데 요즘은 미용실이 대세라 이발소가 많지 않다. 있다고 해도 나이 든 이들이 목욕탕을 끼고 하는 이발소가 대부분이다. 어릴 때부터 이발을 해 온 나로서는 반대로 미용실 가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내겐 이발은 머리털을 깎는 일이고, 미용은 뭔가 칠하고 붙여서 꾸미는 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태 미용실엔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20여 년을 단골로 다니는 ‘전속 이발소’가 있다. 당연히 그 집 이발사는 내게 ‘전속 이발사’인 셈이다. 대통령만 전속 이발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전속’이라는 말과 ‘두다’라는 단어는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의 속성을 패러디한 거다.
나의 단골인 ‘퇴계동 이발사’는 나보다 한 살 위다. 대놓고 나이를 물어 본 적은 없다. 다만, 몇 년 전인가 이발소 정면에 떡하니 붙어 있는 면허증을 볼 때 알아뒀던 정보다. 몇 주 전 미국 가기 전에 머리를 잘랐는데, 머리털도 비행기를 타더니 뭔 변화가 있었는지 예전보다 빨리 자랐다. 나는 평균 한 달에 한 번 퇴계동 이발사를 찾는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우리가 지금 몇 년째 만나고 있지요? 하고 물었더니 19년인가 20년째란다. 아이고, 그렇게 우리가 오래된 古友인데 아직 밥도 한 번 같이 먹지 못했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가 대뜸 말했다. 우리 한 번 뭉칠까요? 뭉쳐 봤자 그이하고 나 달랑 둘인데, 그래도 뭉치잔다. 그래요. 이번 여름에 내가 밥 한 번 살 테니까 점심에 한 번 뭉칩시다. 뭘 좋아하세요? 국수 뭐 그런 거요. 아니, 목사님도 그런 거 드세요? 그런 거라뇨? 전형이나 나나(이때 슬그머니 말을 놓았다. 그는 全씨다) 우리가 어렸을 때 그런 거 먹고 살았잖아요.
그래서 어제, 그가 매주 쉬는 화요일 낮에 나의 전속이발관인 ‘전 형’하고 점심을 먹었다. 삼계탕을 먹는 자리에서 그는 내게 말했다.
“목사님네 교인들이 알까요?”
“뭘요?”
“제가 목사님의 머리털을 20년이나 매만지고 있다는 걸 말예요.”
“그게 무슨 뜻인데요?”
“저는 이제 목사님의 머리털을 만져 보기만 해도 ‘이 양반의 몸이나 마음이 어떤 상태로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과연 목사님네 교인들이 제가 목사님을 아는 것만큼 목사님과 일체감이 있겠느냐는 말이죠.”
머리털만 만져보고도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이발사, 하물며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떠하시랴!
“너희의 머리털까지도 이미 세신 바 되었다”(눅 12:7)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