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선거운동, 재보선서 위력… 몸낮춘 ‘소통의 스킨십’ 유권자 감동

입력 2010-08-01 22:07


7·28 재·보선에서는 출마자들이 발품을 팔아 지역구 곳곳을 돌아다니는 ‘골목길 유세’가 위력을 발휘했다. 이를 두고 중앙당에서 대규모 인력과 유세 장비를 지원하는 기존 선거 패러다임이 바뀌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 만찬에선 한나라당 이재오(서울 은평을) 당선자의 ‘나홀로’ 선거운동이 화제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선거 전략이 점점 그렇게 가는 것 아니냐”며 “외국도 모여서 소리 지르고 하는 것은 안 한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외로우리 만큼 혼자 하겠다”는 전략대로 중앙당 지원을 배제했고, 선거 로고송이나 유세차량도 이용하지 않았다. 매일 새벽 자전거로 목욕탕을 돌며 때를 미는 등 주민들을 1대 1로 만났다. 충북 충주의 윤진식 당선자 역시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답지 않게 농촌 지역 주민들과 감자를 함께 캐고, 마을회관에서 숙박했다. 인천 계양을 이상권 당선자도 중앙당의 선거 지원, 요란한 선거 출정식을 마다하고 1대 1 스킨십에 전력을 쏟았다. 이재오 당선자는 당선 확정 직후 “나홀로 선거운동이 구민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은평구민이 선거문화 개혁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재·보선뿐 아니라 6·2 지방선거 당시에도 국민참여당 소속으로 광주시 구의원에 출마했던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유세차량과 마이크는커녕 어깨띠도 매지 않고 보름 동안 걸어다니며 유권자를 설득해 당선된 바 있다.

정책선거 문화와 상시 선거 운동이 정착된 미국 유럽 등에서는 출마자들이 의정활동 계획서를 들고 유권자와 1대 1로 만나 설득하는 작업이 일상화돼 있다.

지난 30일 은평구를 다시 찾아 들어본 유권자들의 반응은 이 당선자를 찍었든, 안 찍었든 조용한 선거운동에 대해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다. 불광역 인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양미진(43·여)씨는 “예전에는 선거 때마다 시끄러웠는데 장사하는 입장에서 조용하니까 좋기는 좋더라”고 말했다. 이한철(79)씨는 “이재오가 어떤 사람이야, 왕의 남자 아냐. 그런 사람이 겸손하게 다니니 오히려 우리가 몸 둘 바를 모르고 감사하지”라고 말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최미라(38)씨는 “유명한 사람이 티 안 내고 일일이 돌아다니는 거 보니까 신기했다”며 “굉장히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정권 2인자라는 거물의 몸을 낮춘 행보가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처장은 “정치쇼 같은 측면이 없진 않지만 1대 1로 유권자들과 소통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다소 진일보한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런 선거문화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 선거나 총선 등 전국 단위 선거전에 중앙당의 통합 선거 전략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을 폄하하는 국민 정서상 웬만한 거물이 아니면 표로 연결될 만큼 감동을 주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과거 돈선거 부작용 때문에 선거법에서 가정 방문과 상시 선거운동을 제한하고 있는 점이 걸림돌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재·보선에서 ’언더독(약자 동정)’ 효과를 노린 선거 전략이 성공한 경우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는 중앙당에서 내려와 스피커로 떠드는 운동이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선거문화 자체의 변화라고 보기엔 이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나래 유성열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