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정대세 분투기
입력 2010-08-01 18:03
정대세 선수는 그때도 울었다. 2008년 2월 중국 충칭. 동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리그 첫 경기.
국가가 연주될 때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경기장에 울려 퍼지고 있던 국가는 상대편인 일본의 기미가요였다. 나중에 정 선수는 겸연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익숙한 노래가 들려와서 착각했어요.”
정 선수의 국적은 대한민국. 나고 자란 곳은 일본. 그런데 북한의 국가대표 축구 선수다.
북한 동료들이 반갑게만 맞아준 건 아니었다. 일부러 그에게 공을 주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대세가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며 이렇게 얘기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사회주의적 인간에게 단체 행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혼자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개인행동을 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입니다. 대세 없이도 우리끼리 잘할 수 있습니다.”(모리 마사후미, ‘정대세 분투기’)
한국도 그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박지성 선수와 함께 출연하기로 한 광고는 끝내 방영되지 못했다.
일본도 모질게 굴었다. 어린 시절, 일본 아이들과 축구 경기를 할 때면 “조센징! 김치 냄새 지독해”라는 소리를 질리도록 들었다.
정 선수는 조선학교 출신이다. 광복 후 귀국하지 못한 재일동포들이 민족교육을 위해 세운 곳이다. 이승만 정부는 지원을 외면했지만, 김일성 정권은 교과서와 예산을 보냈다.
그래서 조선학교는 북한에 편향된 면도 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곳 학생과 교사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일본과 남북한 사이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2007년 개봉 다큐 영화 ‘우리학교’)
이들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손쉬운 결론을 내리기보다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조선학교 출신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에 나오는 이런 문장도 그 결과일 것이다.
“나의 연애는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평화주의 귀족주의 채식주의니 하는 모든 ‘주의’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념도 국적도 괘념치 않는 정 선수의 천진난만함이 밉지 않다. 오히려 장마 끝의 파란 하늘을 보는 듯 낯설면서도 반갑다.
통일된 한반도를 살아갈 젊은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게 궁금할 때면 정 선수를 떠올리게 된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