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름 문단은 따뜻했네… 암 투병 소설가 김남일에 성금 답지

입력 2010-07-30 18:53


투병 중임을 내색하지 않고 문단 살림을 이끌어온 작가 김남일(53·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성금이 답지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김씨는 올 초 작가회의 사무총장직을 맡은 이래 지난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확인서’ 제출 요구에 맞서 문예위 보조금을 받지 않고, 현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 등에 대한 ‘저항의 글쓰기’를 펼친 주역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 6월 이대목동병원에서 위암 수술로 위 75%를 잘라내고 누워 있다. 앞으로도 6개월 정도 항암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 그의 투병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소설가 오수연이 주축이 돼 만든 모임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행사차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위급은 감지됐다.

그러나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고 차일피일하는 동안 작가회의 사무총장직을 덜컥 맡게 됐다. 그 전부터 밥이 잘 안 넘어가고 뱃살 아래에서 뭐가 잡혀지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전업작가로 사는 게 급급해 보험을 들지 않은 탓도 있었다. 보다 못한 문단 선후배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알리지 않았다”는 그를 위해 모금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13일 시인 이시영 도종환 강형철 등이 모여 한시적으로 모금하기로 했다. 한 달 만에 112명이 동참해 2900만원이 모아졌다. 비공개 모금이지만 액수는 예상을 넘어섰다. 한국문단은 따뜻했다. 선후배 사이에 면면히 흐르는 정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이번처럼 빛을 발한 경우는 드물다.

김씨는 수술 이후 20일 정도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서울 대림동 자택에서 몸조리를 하며 매달 1회씩 통원치료 중이다. 주변에선 좀 쉬면서 몸을 가눌 것을 권하지만 틈틈이 작가회의 일을 전화로 챙기면서 젖 먹던 힘을 내고 있다. 사실 그의 병은 지난해 겨울, 강원도 홍천에 칩거하면서 장편 ‘천재토끼 차상문’을 탈고하면서 더 악화됐다.

“1980년대 정신없이 싸우고 글 쓰다가 90년대에 방향을 못 잡고 한동안 헤맸다”는 그는 작가로서의 소명을 위해 이 소설을 붙들었던 것이다. 96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천재 테러리스트 유나바머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지만, 소설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주인공을 인간에서 토끼로 바꾸자 이야기가 저절로 풀려나왔다.

지난 1월 출간된 ‘천재토끼 차상문’은 장편소설로는 96년 ‘국경’ 이후 14년 만의 작품이다. 그는 자신 안에서 웅얼대는 오랜 침묵을 깨고 싶어 병마가 엄습하는 줄도 모르고 외롭고 추운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창작열을 불태웠다. 그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종착지에 대해 묻고 있다. 그가 염원하는 삶의 종착지는 결코 여기가 아니라고 믿고 있는 작가회의 회원들의 마음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02-313-1486).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