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오염 주범’ 익산 왕궁축산단지 정비되는데… 한센인 ‘61년 恨’ 씻겨질까

입력 2010-07-30 21:01

1948년 한 무리의 환자들이 무장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전북 익산 왕궁 지역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한센인’이었다. 온갖 무서운 소문들이 낙인처럼 따라다녔고 어디를 가나 돌팔매와 욕질을 당했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전북 김제 다리 밑에서 살던 이들은 정부의 이주·격리 정책에 의해 왕궁 지역으로 옮겨졌다.

◇“갇힌 생활을 했다”=왕궁지역에 들어온 한센인 250명은 초가집 스무 채를 짓고 한 집에 두 가구씩 들어가 살았다. 이른바 ‘왕궁 정착촌’의 시작이었다.

별다른 생업을 구할 수 없던 한센인들은 정부에서 나눠주는 구호품에 의지해 끼니를 때웠다. 외부로 통하는 길목마다 감시초소가 있었다. 한센인들은 정착촌 바깥출입을 엄격히 통제당했다. 한센인 부부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면 젖을 떼자마자 정착촌 밖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한센병은 유전되지 않는다. 부모가 환자라 하더라도 아이에게 병이 대물림되지 않는데, 정부의 엄격한 격리정책에 따라 아이들은 정착촌 바깥으로 내보내졌다. 한 달에 한 번 부모가 면회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59년 정부는 왕궁 정착촌 주민들에게 축산업을 권장했다. 처음엔 닭을 키웠는데 규모가 점점 커졌다. 사육시설이 점차 비좁아지고 노후화되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돌아 자꾸만 닭이 죽어나갔다.

사육시설을 넓히기 위해 주변의 땅을 사려고 해도 “한센인들에게는 땅을 팔 수 없다”는 인근 주민들의 냉대 탓에 시설 확장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이즈음 한센인들의 바깥출입을 막던 감시초소가 사라졌다. 하지만 정착촌과 일반인 지역 사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높이 서있었다.

◇설움과 핍박의 대물림=한센인 2세들은 정착촌 안에 설치된 분교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다. 인근 외지 학교에 아이를 보내면 ‘한센인 자식’이라는 이유로 감내하기 어려운 욕설과 폭력,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취직을 하려 해도 이력서에 적힌 출신지와 학교 탓에 정착촌 출신임이 밝혀져 번번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70년대 들어 정착촌에서는 닭 대신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축산분뇨가 배수로를 타고 하천으로 흘러들어갔다. 당시엔 아무런 법적 규제가 없는 시절이었다.

91년 ‘오수분뇨 및 축산폐수 처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시행되면서 축산 농가는 분뇨처리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했지만 왕궁 지역은 사실상 법의 사각지대였다. 괄시와 핍박을 당하며 응어리진 가슴을 안고 살았던 한센인들은 필사적으로 당국의 단속에 맞섰다. 90년대 상반기 돼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어느 정도 타격이 있었지만 분뇨 처리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만큼 왕궁 지역은 타 지역에 비해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한센인 1세대들의 나이가 많아져 노인들이 속속 세상을 떠나자 2세들이 축산업을 물려받거나 일반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령자들과 수지를 맞추지 못하는 소규모 농가들이 축산업을 접으면서 축산업 가구 수는 줄어들었다. 대신 대규모 양돈이 시작돼 돼지 마릿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마을에 있는 저수지 3곳엔 돼지 분뇨가 차올라 거대한 시궁창이 됐다. 비라도 쏟아지면 시커먼 축산 분뇨가 개울을 따라 그대로 익산천으로 흘러들어갔다. 분뇨처리시설이 설치되긴 했지만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사육규모를 감당하기엔 부족했다.

◇“1년이라도 쾌적하게 살다 가고파”=왕궁 축산단지는 어느새 새만금으로 흘러드는 익산천·만경강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90년대 후반부터 정부는 왕궁 지역 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놨지만 속 시원한 성과는 도출되지 못했다. 지난 1월 정부는 새만금 개발계획을 확정했는데, 만경강의 수질 개선이 성공의 전제 조건으로 부각됐다. 정부는 30일 7개 부처 합동으로 ‘왕궁 정착농원 환경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휴·폐업 상태인 축사를 매입해 숲을 조성하고 한센인들을 위한 노인요양시설을 설치하는 내용이 골자다. 마을 대표 격인 익산복지농원 김종윤(72) 회장은 “우리는 온갖 설움을 당하고도 한마디 못한 채 숨죽이며 은둔자 생활을 해왔다”며 “단지 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당했던 설움을 2, 3세들은 더 이상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익산시는 “왕궁 지역 축산농가의 80%가 폐업 의사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40∼50대가 주축인 한센인 2세들은 폐업 이후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막막한 현실이다. 정부는 시가 매입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이들은 ‘장사 밑천이라도 만들 수 있는 보상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의 한센인들은 1만3734명이며 이들 중 7763명은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고 소록도에 598명, 민간시설 6곳에 625명이 살고 있다. 왕궁 지역과 유사한 정착농원은 90곳이다. 이곳에서 4748명의 한센인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익산=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