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침 같은 루머 그리고 가면속의 ‘우리’… 하재영 첫 장편 ‘스캔들’

입력 2010-07-30 18:03


카이사르는 “인간은 소문의 노예이고, 그 소문을 제멋대로 분칠해서 자기네 편한 대로 믿어버린다”고 말했다. 소문은 그것을 퍼트린 사람도 모를 형태로 돌아다니고, 표적이 된 사람은 칼침과도 같은 루머에 맞고 쓰러진다. 하재영(31)의 첫 장편 ‘스캔들’(민음사)은 분칠된 소문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서른 살 지효는 어느날 텔레비전에서 유명 연예인이 된 고교 동창 미아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미아와 지효는 한때 친했지만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연락한 적이 없는 사이다. 미아는 생전 여러 남자 연예인들과 염문을 일으켰고, 죽은 후에도 미아를 둘러싼 소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효는 고교 시절 미아와의 추억을 돌아보며 그녀의 불행에 자신이 일조했던 사실을 넋두리처럼 풀어낸다.

소설은 소문이 생성되고 증폭되는 과정을 통해 익명과 집단의 폭력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소문의 당사자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집단으로부터 유리되는 것과 더불어, 소문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끼리의 세계를 완성한다. 당사자가 나만 아니라면, 소문을 공유하는 것은 집단의 결속력을 공유한다는 뜻이며 그룹의 인사이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적극적으로 소문을 만들고 확대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그렇기에 대중의 수군거림은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다.

소문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완벽한가. 동료에 묻혀 질식해버린 미아의 사망 소식이 텔레비전에 나오고 있을 때, 지효는 옛 애인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미아는 소문에 할퀴어진 반면 지효는 안전하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솔직한 게 뭐가 나빠?”라는 미아의 오래 전 질문을 떠올리며 지효는 말한다. “미아가 그때도 내 친구였다면 ‘솔직하게’ 말해 주었으리라. 솔직한 건 나쁘다고. 상처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솔직한 사람이라고. 바로 그 솔직한 인간들 때문에 관계는 어려워지고 종국에는 모든 것이 엉망으로 헝클어진다고. 그러므로 솔직함은 미성숙의 동의어에 불과하다고.”(74쪽)

익명의 시대, 유명인인 누군가가 자살했다는 뉴스는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이젠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그들이 받았을 상처를 되짚어보는 작업도 식상하게만 여겨진다. 하지만 일개인이 대중 앞에서 낱낱이 까발려지고 무자비한 손가락질을 받을 때 진정 피해자는 누구인가. 거짓으로 치장했더라면 소문 앞에서 안전했을 사람에게 돌팔매질하는 사이 피폐해지는 건 우리 자신의 인간성이다. 우리가 부여잡는 건 도덕적인 체하는 우리들의 가면일 뿐이다.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144쪽 짜리 책이 풀어내는 풍경은 낯익어 금방 읽힌다. 가볍고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모니터 앞에 앉아 누군가를 향해 칼날과도 같은 댓글을 남기곤 금방 잊어버리는 우리를 비추고 있어 편하게 읽히지만은 않는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