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광대’ 하늘 무대로 가다… 코미디언 백남봉씨 별세
입력 2010-07-29 21:12
6·25 피란길에 아버지를 잃은 소년은 껌팔이, 공장 직공, 구두닦이, 장돌뱅이를 전전하며 배고픔을 견뎠다. 의지할 데 없는 고아는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을 웃기기 시작했다. 시골 장터에서 만난 각 지역의 사람들을 흉내 내자 사람들은 웃음으로 경계를 풀었다. 갈고 닦은 장타령과 사설은 실향민들의 아픔을 달래줬다. 특히 그의 장기인 ‘뱃고동 소리 모사’는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게 하며 ‘아련한 웃음’을 안겨줬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뱃고동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원맨쇼의 달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원로 코미디언 백남봉(본명 박두식)씨가 71세를 일기로 29일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고인은 2008년 늑막염 수술 중 암세포가 발견돼 폐암 진단을 받고 경기도 한 재활원에서 요양했다. 최근 폐렴증세에 합병증까지 생기며 병세가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졌고, 28일 오후부터 급격히 증세가 심해지더니 끝내 눈을 감았다.
고인은 스물여섯 되던 해 그의 길거리 공연을 눈여겨본 어느 정계 인사의 소개로 원로코미디언 이종철씨를 만나며 희극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극단을 전전하며 재능을 키웠고 1969년 TBC 라디오 ‘장기자랑’에서 ‘김치 팔도 사투리’를 선보이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김장재료인 마늘 양파 고춧가루 등이 모여 마라톤을 벌이는 모습을 중계하는 내용으로, 고인은 팔도 사투리를 구성지게 구사해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원맨쇼’의 일인자였던 남보원(74)씨가 고인에게 자신의 공연 전에는 ‘팔도 사투리’를 하지 말라고 부탁한 일화는 유명하다.
다재다능한 개인기를 기반으로 하는 고인의 코미디는 당시 만연했던 ‘콩트’ 위주의 풍토에서 단연 빛났다. 고인은 이후에도 ‘석양의 무법자’ ‘휘파람’ ‘기관총’ 등 기발한 소리를 개발해 ‘원맨쇼의 달인’으로 불리며 70∼80년대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고인은 후배들과 자다가도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후배 앞에서 원맨쇼를 할 정도로 코미디 정신이 투철했다. 고인은 이 정신을 생의 문턱에서도 지켰다. 딸 윤희씨는 “아버지는 병상에서도 가족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코미디언이셨다”고 말했다. 엄용수 코미디협회장도 “선생님은 코미디언으로서 긍지를 갖고 있었고, 코미디언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좋은 직업이란 걸 후배들에게 항상 강조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노년기에도 왕성히 활동했다. 2000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은 그는 병세가 악화되기 전까지 SBS ‘출발 모닝와이드’ ‘전국일주’ 등에 출연했으며, 2005년에는 앨범 ‘청학동 훈장나리’를 내기도 했다. 남보원씨는 “한 달 반 전 병문안을 갔는데 나에게 자기가 낫거든 투맨쇼를 멋지게 해서 국민들에게 보여주자고 했다”면서 “(하늘에서도) 우리들에게 더 큰 웃음을 주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남씨를 비롯해 서수남 최불암 최양락 김미화 등 후배와 동료 연예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옥씨와 아들 준, 딸 정선 윤희씨가 있다. 장례는 코미디협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31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도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02-3410-6903).
이선희 기자 노자운 대학생 인턴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