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연구원 2명 표절파문… 통째로 베끼고 “몰랐었다” 출처 안 밝히고 “깜박했다”

입력 2010-07-29 18:51

한국국방연구원(KIDA) 소속 고위급 연구원들의 논문 표절 의혹은 우리 사회의 표절 관행이 얼마나 심각하고 죄의식 없이 이뤄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표절로 드러난 보고서가 군의 대테러 정책 수립 과정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방 정책이 얼마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8쪽 분량을 통째로 전재…국방 정책 신뢰도 흔들=문모씨가 연구 책임자로 발행한 단행본 ‘뉴 테러리즘의 오늘과 내일’은 2장 ‘국제 테러리즘의 특성과 추세 분석’ 중 테러리즘의 동기와 뉴 테러리즘의 특성을 기술한 부분에서 원저자인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장의 논문을 거의 그대로 옮기는 ‘텍스트 표절’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텍스트 표절이란 텍스트 일부를 그대로 베끼는 행위다.

이 부분에 쓴 144개 문장 중 113개(78.5%)는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일치했다. 나머지 31개 문장도 ‘테러리스트’를 ‘테러범’으로, ‘텔레비전’을 ‘TV’로 대체하는 등 경미하게 달랐을 뿐 내용은 거의 동일했다고 연구원 측은 밝혔다. 하지만 문씨는 이 내용을 전재하면서 요인 암살 설명 부분인 57쪽에서 ‘한국테러리즘연구소에 수록된 내용을 위주로 작성’이라는 각주를 한 차례 붙이는 데 그쳤다. 그는 매주 한 편씩 국방 현안을 보도하는 주간지 ‘주간 국방논단’에도 같은 논문을 실었다.

김모씨 역시 문씨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공동 논문 중 테러리즘 원인을 분석한 부분에서 최 소장의 저서를 ‘모자이크 표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자이크 표절이란 본문 일부를 조합하거나 단어를 추가·삽입 또는 동의어로 대체하는 행위다. 예컨대 최 소장이 원저에서 ‘테드 거(Ted R Gurr) 박사가 체계화한 ‘상대적 박탈감 이론’이 가장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쓴 문장을 ’테드 거 박사는 테러리즘의 발생 원인을 ‘상대적 박탈감 이론’으로 체계화하였다’로 바꾼 것이다. 김씨는 최 소장의 원저를 인용한 사실도 적시하지 않았다. 김씨는 이 논문을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문씨는 연구과제 수행 비용으로 300여만원을, 김씨는 세미나 발표비로 25만원을 받았다.

국방연구원은 조사 결과 표절로 확인되자 문씨와 김씨를 면직 처분하고, 연구 보고서나 논문 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윤리 규정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국방연구원 관계자는 29일 “표절에 의해 정책연구 결과가 나오면 국방 정책 전반의 신뢰성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사자 “표절로 모는 것은 부당”=문씨와 김씨는 표절이 아니며, 인용했다는 표현이 실수로 빠졌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문씨는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소장에서 “한국테러리즘연구소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만 이용했을 뿐”이라며 “이 내용이 최 소장의 저작물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도 “인터넷 게시물을 인용했는데 각주가 빠진 것에 불과하다”며 “그 당시엔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각주를 달지 않은 것은 실수지만 인용한 부분은 (최 소장의) 독창적인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도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징계 사유가 발생한 뒤 2년이 지나면 징계할 수 없는데 이건 8년도 더 지난 얘기”라며 “국방연구원의 면직 처분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