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측보행 전면시행 한달, 서울 시내 걸어봤더니… 여전한 좌측통행 여기저기 좌충우돌
입력 2010-07-29 21:51
인간은 원래 오른쪽으로 걷길 좋아했다. 어린 시절, 골목길을 갈 때도 오른쪽 담벼락을 타고 걷는 게 마음이 편했다. 구불구불한 양철로 된 담장이라도 만나면 기어이 손을 대고 소리가 나게 걷곤 했다. 전문가들은 우측보행을 할 때 보행자의 심리적 부담이 적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왼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일제 치하인 1921년부터 좌측보행이 보편화된 탓이다. 정부는 보행자 중심의 교통체계를 갖추고 교통사고를 줄인다는 취지로 지난 1일부터 우측보행을 전면 시행했다. 89년 만에 걷는 방향이 제도적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의무사항은 아니고 권장사항이다. 시민들은 얼마나 적응했을까. 제도시행 한 달째를 앞둔 29일 실제 우측보행을 해보며 서울 거리를 다녀봤다.
오후 1시쯤 서울 광화문 지하철(5호선) 6번 출구.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수월했다.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오른쪽으로 향했다. 역사 내 벽마다 우측보행을 홍보하는 포스터와 계단 곳곳에 붙어 있는 노란색 우측보행 안내 스티커가 도움이 된 듯했다. 지하철 계단에서 만난 최모(45·회사원)씨는 “지하철역이나 TV를 통해서 우측보행 시행에 대한 광고물을 많이 봤다”면서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이젠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상으로 올라오자 상황은 돌변했다. 맞은편 광화문 우체국 방향으로 향하는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여러 행인들과 부딪칠 뻔했다. 행인이 많은 방향에 따라 행인 경로는 서너 갈래로 갈라졌다.
서울역 인근의 한 대형마트 역시 비상구 계단에는 우측보행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만 에스컬레이터는 좌측통행 방향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초·중·고등학교 등에서는 우측보행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서울 신길동 Y초등학교와 영등포본동 Y여고 앞에서 만난 학생들 상당수는 “학교에서 우측보행에 대한 교육은 받았다”면서 “하지만 막상 걸을 때는 별 생각 없이 걷게 된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우측보행이 정착되면 인파가 붐비는 인도와 지하철 역사 등에서 보행자 속도가 최고 70%가량 빨라지고, 보행자 교통사고도 20% 정도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미국, 캐나다, 스페인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우측보행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물의 회전문도 우측 보행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좌측보행 습관을 단기간에 바꾸는 게 쉽지는 않다”면서 “적극적인 안내를 통해 제도 정착을 앞당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김우수 김창현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