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법, 美 국론 분열 ‘판도라 상자’ 우려… 인종차별 요소·보수- 진보 대립 등 복잡하게 얽혀

입력 2010-07-29 18:30


올여름 불볕더위보다 미국 사회를 더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애리조나주의 새로운 반(反)이민법이 29일(현지시간)부터 발효됐다.

반이민법은 인종차별적 요소와 보수·진보세력 간 찬반 논란, 위헌 소송까지 간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충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강력한 이민개혁 정책 등과 얽히면서 미국 내 가장 큰 정치적·사회적 현안이 됐다.

발효된 반이민법은 일단 핵심조항이 유보됨으로써 당장 본격적인 단속은 어려워졌다. 발효 하루 전인 28일 애리조나주 피닉스 연방지방법원이 이민법 조항 중 지역 경찰관이 다른 범법 행위를 단속하면서 체류 신분을 확인하게 하는 내용 등 일부 핵심 조항에 대해 예비 금지명령을 내린 까닭이다.

◇애리조나주에서는 무슨 일이=미국 내 불법 체류자는 1080만명(2009년 기준)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800만명 정도가 불법 취업을 하고 있다. 애리조나주에서는 반이민법이 추진되면서 히스패닉들의 대탈출이 진행되고 있다. 지역경제에도 타격을 줄 정도라고 현지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불법 체류자들이라 공식 통계는 없다. 하지만 애리조나주에서 반이민 정서가 확산되면서 2년 전 56만명이던 불법 체류자가 올해 46만명으로 줄었다. 주 재정수입도 20억 달러나 감소했다. 일부 현지 언론은 반이민법 발효를 전후해 30만명 이상이 단속을 피해 인근 캘리포니아주 등으로 떠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리조나주는 매년 불법 이민자에게 교육비 6억 달러, 범죄자 수감비용 1억2000만 달러, 치료비 5000만 달러 등 사회비용이 지출돼 복지수준 저하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주민들의 세금이 불법 체류자들에게 ‘새고 있다’는 인식이다.

애리조나주가 반이민법을 추진하자 다른 20여개 주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추진 중이다. 전국적인 여론조사에서는 애리조나주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찬성이 반대보다 조금 높게 나오고 있다.

◇인종차별적 논란 확산=앞으로가 더 문제다. 불법 체류자 단속은 전적으로 연방정부 권한이었다. 애리조나주가 처음으로 그 권한을 자체적으로 갖겠다며 반이민법을 추진해 온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반이민법과 반대되는 취지의 이민개혁 정책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한 데 대해 애리조나주가 반기를 든 것이다.

그 배경엔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백인 중산층의 불만과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일자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히스패닉을 중심으로 한 불법 이민이 늘고 있어서다. 그래서 불법 체류자 단속 문제는 인종차별적 문제가 배어 있다는 것이다.

인구 3만명의 일리노이주 호머타운십 의회가 이달 중순 애리조나주 반이민법을 지지하기 위해 영어를 공식 언어로 명문화한 결의안을 채택한 사례는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이 도시는 백인이 94%다.

애리조나주 이민법을 찬성하는 측은 “이 문제는 불법 체류자에 대한 재정 부담 등 납세와 관련된 문제이지 인종차별이 아니다”고 반박한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이민법을 적극 찬성한다. “미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그들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단체와 진보세력 등은 “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사회보장연금을 내는 등 기본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찬반이 뜨겁게 가열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정책은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주요 골자는 대부분 불법 체류자들을 합법적 신분으로 구제해주는 것이다. 공화당은 중간선거를 의식, 히스패닉 유권자를 끌어들이려는 정략이라며 일전을 벼르고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