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 사임] 친서민 중도실용 기치… 세종시 수정안 부결이 치명타

입력 2010-07-29 21:41

정운찬 국무총리가 취임 10개월여 만에 세종시 수정안 폐기와 함께 퇴진했다. 재임 시절 수차례 “세종시 총리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한 순간도 세종시의 굴레를 벗지 못한 셈이다.



정 총리는 지난해 9월 29일 한승수 전 총리에 이어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총리로 취임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물망에도 올랐던 개혁적 경제전문가라는 이미지가 이 대통령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예상을 깬 파격적 인사였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이끌 적임자로 정 총리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총리 내정 직후 “세종시는 경제학자인 내 눈으로 볼 때 효율적인 모습은 아니다”라며 세종시 수정 필요성을 언급한 발언이 알려지며 야당의 집단 반발을 샀다. 취임 후 세종시 수정안 추진의 전면에 나섰지만, 번번이 강한 반대에 부닥쳤다.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후 세종시 수정안마저 국회 본회의에서 폐기되면서 사실상 정 총리의 정치적 생명이 다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대학교수 시절 기업인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깨끗했던 이미지에 씻기 힘든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또 대정부질문 도중 2차 세계대전 당시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 731부대에 대한 질문에 “항일 독립군이냐”고 되묻고, 독신이었던 민주당 고 이용삼 의원의 빈소에서는 ‘자제분이 어려서’라고 말실수를 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각종 정부 현안들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며 주요 국정 현안을 직접 챙기는 총리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도 있다. 정 총리는 취임 이후 모두 13차례 충청권을 찾는 등 세종시 수정안 관철을 위한 노력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지난해 10월에는 당시 최대 현안이던 용산 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참사 현장을 찾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부산에서 발생한 일본인 사격장 화재 희생자들을 조문하는 등 총리로서 각종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역할에 충실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