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성혜영] 하늘로 가는 다리

입력 2010-07-29 18:14


마을 이름이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 ‘하늘로 가는 다리’라고 했다. 애칭도 별명도 아닌 실제 이름치고는 만용이 아닐까 싶은 이름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3대 절경 가운데 하나란다. 삶이 초라한 시대일수록 문화에 대해 떠든다던가. 불행하게도 너무 근사한 이름이거나 호들갑스러운 찬사를 만날 때면 대뜸 의심부터 하게 되는 슬픈 현실이지만,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그 이름이었다.

내친김에 객실에서 ‘하늘로 가는 다리’가 보인다는 호텔을 예약해 놓은 터였다. 여장을 풀고 장지문을 여니 눈앞에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지만, 기대했던 다리는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벼르고 별러 나선 여행이었던지라 막 낭패감이 들던 차, 마침 안내를 하러 들어온 유카타 차림의 여종업원이 긴 섬 모양의 소나무 숲을 가리키며 나긋나긋 설명해 주었다. 그 ‘하늘로 가는 다리’를 보기 위해서는 전망대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우선 가볍게 산책을 하기로 했다.

바다로 나 있는 솔밭 길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았는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삼삼오오 지나갔고, 곡선이 아름다운 모래톱 위에서 몇 무리가 아쉬운 듯 주섬주섬 물놀이를 접고 있었다.

아마노하시다테 역에서 만의 반대쪽을 잇는 지름길인 3.6㎞의 이 길. 이방인들에게는 하루의 낭만을 선물하는 ‘하늘로 가는 다리’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일상을 나르는 길이자 침식과 소나무 재선충에 대한 대책을 걱정해야 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 속에 묻혀왔을 숱한 이야기가 어떻든, 늙은 소나무들이 호위하고 있는 그 길은 향기롭고 평화롭기만 했다. 솔숲 사이로 저녁 바다가 빛났다.

다음날 오전, 버스를 타고 마을 반대편으로 이동해 가사마츠(傘松)공원 전망대에 올랐다. 어제 걸었던 그 솔숲 길, ‘하늘로 가는 다리’는 하늘이 아니라 저 멀리 발아래에 있었다.

실제로 에도시대에는 항상 안개가 끼어 다리가 하늘로 이어지는 길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다리가 하늘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자세가 필요했다. 바다를 등지고 서서 상체를 숙여 물구나무서듯 양다리 사이로 머리를 넣고 보면, 마치 그 길이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민망한 듯 쭈뼛거리면서 엉덩이를 쳐든 모습은 적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행복이란 그렇게 조금씩 우스워지는 것이라던가. 얼마간 속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한바탕 웃고 나니 내려오는 길은 한결 즐거웠다. 여행 끝의 피곤함도 불볕더위로 인한 짜증도 그런대로 참을 만해졌다.

역으로 돌아오는 길은 육로 대신에 바닷길을 택했다. 바다 한가운데 배 위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었다. 그 끝이 하늘이건 바다건 삶이란 길 저편의 그 무엇을 꿈꾸는 것일 게다. 필요한 것은 ‘은하철도 999’의 상상력일 따름이다.

성혜영(박물관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