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 (金) 염려는 본질상 불신앙입니다
입력 2010-07-29 19:18
찬송:‘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
신앙고백:사도신경
본문:“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장 31∼32절)
말씀:‘염려하다’는 헬라어로 ‘메림나오’입니다. 이 단어는 ‘나눠지다(메리조)’라는 동사와 ‘마음(무스)’이라는 명사가 합쳐서 만들어진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마음을 나누어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는 것은 마음의 한쪽은 오늘에 있고 다른 한쪽은 내일의 염려를 위해 사용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 힘을 다해 정성을 쏟아 부어도 될까 말까 한데, 그중에 절반이 다른 곳에 있으니 그 얼마나 손해가 되겠습니까?
염려는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든 에너지만 소모되어 버릴 뿐 백해무익한 일입니다. 그래서 염려보다 더 큰 죄는 많지만, 염려처럼 사람의 능력을 저하시키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염려의 무익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교훈을 통해서 염려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공중의 새는 창고에 먹이를 쌓아 놓는 법이 없습니다. 재테크라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걱정하지 않고 삽니다. 또한 들의 백합꽃은 하루 동안만 잠시 피지만, 그 동안에는 제왕들의 옷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다 먹이시고 키우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한낱 짐승이나 들풀에 불과한 피조물도 이렇게 기르시고 귀한 것으로 입히시는데,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고 독생자를 내어 주셔서 구원하신 우리 인간은 얼마나 더 귀하게 돌보시고 키우시지 않겠습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염려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신앙입니다. 염려는 질투심이 많고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신을 만든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행동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바로 염려하지 않음으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하나님 앞에 내어 드리기 바랍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기억하며 늘 감사로 염려를 이기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근심과 걱정과 염려 속에서 자유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백동조 목사(목포사랑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