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나를 부르시는 음성

입력 2010-07-29 19:19


마태복음 4장 19절, 마가복음 8장 35절, 요한복음 21장 22절

J M 보이스는 ‘예수 제자의 길’에서 “20세기 교회의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은 진정한 제자도의 결핍입니다. 제자도란 그리스도를 좇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늘날 크리스천이라 칭하는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하고, 심지어 그분을 위해 열심을 다해 봉사하지만, 실상은 그리스도를 좇는 데는 전혀 무관심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고 말합니다.

20세기만이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와 10년이 지난 오늘, 진정한 제자도의 결핍이 바로 한국교회의 치명적인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최근 국민일보에 “언론의 ‘기독교 비판’이 타 종교에 비해 압도적”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보도의 공정성을 따지기 전, 부끄럽고 속상합니다. 누구의 탓으로 돌리겠습니까? 결국 내 문제입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의미는 ‘세상에서 불러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주님은 세상에 있는 제자를 부르실 때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이런 강력한 주님의 음성이 지금 우리의 마음에 여전히 생생하게 들려옵니까?

“나를 따라오라.” 나는 이 음성을 가슴 깊이에서 되뇔수록 왜 그런지 눈물이 자꾸 흐릅니다. 아마도 긴 세월, 주님을 따라 살아왔으면서도 지금, 나 자신은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좇고 있는지가 선명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를 부르신 주님은 누구십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 신앙고백은 천국 열쇠를 받을 만큼 주님을 만족케 해드린 대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를 부르신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기를 원하시는 그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사랑하는 이여,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는 일이 선명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다시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이 누구신가를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서 53장에 보면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분,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분,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된 분, 간고를 많이 겪고 질고를 아는 분, 멸시를 당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시고,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상하시고, 우리의 평화를 위해 징계를 받으시고, 우리의 나음을 위해 채찍을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욕을 당하며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신 분이며,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분이셨습니다. 나를 위해 멸시를 당하시고, 내 죄 때문에 상하시고, 내 죄를 담당하고 죽으신 분입니다. 바로 이런 분이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은 나를 ‘비우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내려놓지 않고는 따를 수 없는 제자의 길에서 제자들에게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해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G 보른캄은 ‘나사렛 예수’란 책에서 “나를 따르라”는 주의 음성은 ‘즉시’의 긴박성과 ‘절대복종’에의 부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담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결단해야 합니다.

원종국 목사 (춘천제일감리교회 감리회 동부연회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