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 펴낸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

입력 2010-07-29 18:06


지리학자 최영준(69)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20년간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했다. 여유롭게 주말별장을 가는 것도 아니었고, 땅 투기를 위해 들쑤시고 다닌 것도 아니었다.

만 49세 생일날 “조상님들 중에 49세 이상 사신 분이 없다”고 초조해하던 선친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득 자신이 그 나이에 도달했음을 깨달은 최 교수는 “마의 마흔아홉 고비를 넘겼으니 내 생애는 덤으로 사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좋은 글을 읽으며 공부한 내용을 다듬어 글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렇게 강원도 춘천시 홍천강변에 집 한 채를 마련했다. 주중에는 서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주말과 방학에는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아내와 “앞으로 남과 다투지 말고 지나치게 부를 축적하는 데 집착하지 말자. 가진 건 현명하게 지키고 부당하게 내 것을 빼앗으려는 자에게는 단호하되, 도움을 구하는 선한 이들에게는 망설임 없이 주자”고 다짐했다.

그는 농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농사법을 남기고자 시작한 일기에 최 교수는 입출혈기(入出峽記)라는 제목을 붙였다. 다산 정약용의 시 ‘협곡을 나오며(出峽)’에서 따온 것이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한길사)은 그의 일기를 묶은 책이다.

책에는 농사의 참다운 의미와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그의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최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신성하다고 말하면서 땀 흘려 일하기를 꺼린다. 도시 사람들은 체육관에서 흘리는 땀은 귀하고 고급스럽지만, 노동으로 흘리는 땀은 천한 것으로 여긴다”고 비판한다. 그는 “퇴계(退溪·이황)와 반계(磻溪·유형원) 역시 농사를 지었다. 옛 선비들은 체면치레 하느라 굶주리는 자를 진정한 선비로 여기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최 교수가 진지한 이야기만 일기에 남긴 것은 아니다. 가족 간의 일상이나 주변인들과의 일화도 담았다. “나는 고추 모를 심을 구멍을 파고 아내는 고추 모를 구멍에 넣고 아들들은 물을 부은 후 북을 주었다. 우리 가족의 정성으로 금년에는 120주의 고추들이 건강하게 자랄 것이다.”(97. 5. 9)

“무의 양이 너무 많아 R교수와 K교수에게 서너 단씩 나눠주었다. 동치미감으로 적당한 크기이고 무가 달고 수분이 많다면서 R교수는 내가 수준급의 농사꾼이 되었다고 추켜세운다.”(93. 11. 7)

최 교수는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마음가짐을 당부했다. “도시 사람이 농토를 소유하고자 한다면 우선 땅을 사랑해야 하고, 작물을 가꿀 체력이 있어야 하며, 누구에게나 농사일을 배울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작물의 싹이 터서 자라는 과정을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인내력이 있어야 합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