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시대의 아이콘’ 만들기
입력 2010-07-29 18:02
소문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퓰리처상 사진전’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전시 제목보다 더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실 사진전에 관객이 많이 든다는 건 관련 종사자로서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소개해 놔도 대중의 호응이 없어 집안 행사로 끝난 전시가 수두룩한 상태에서 사진전이 성공한다는 건 어떤 성격이냐를 막론하고 희망의 가능성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진실의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퓰리처상 사진전은 퓰리처상에 사진 부문이 포함된 1948년부터 최근까지 역대 수상작 중 기사로서 가치가 높은 사진들을 꼽아놓은 전시. 수단의 기근 문제를 다룬,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 사진이나 반전 여론의 불씨가 된 베트콩의 즉결 처형 사진 등은 이미 시대의 아이콘이자 포토저널리즘 역사의 대표적 사진으로 꼽히고 있다.
방학임을 감안하더라도 평일 낮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전을 감상하는 건 드문 풍경이다. 어린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주말에는 기다렸다가 입장했다는 말이 실감된다. 과연 전시의 어느 부분이 사람들을 이곳까지 오게 할까? 사진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는 친구 하나는 자기 같은 문외한조차 왠지 다녀오지 않으면 교양 없는 사람이 될 듯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했다. 사람들은 사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진과 얽힌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고의 언론상이라는 퓰리처상의 권위, ‘진실의 순간’이라는 부제는 역시나 사진전 홍보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듯하다.
그러나 퓰리처상 사진상 응모 조건이 미국 언론에 소개된 사진이라는 점은 잘 부각되지 않는다. 퓰리처상 사진상은 저널리스트 중심의 심사위원단이 한 해 동안 미국 일간지 및 주간지와 인터넷 신문에 소개된 사진들 중 가치가 높은 사진을 추천한 뒤, 다시 퓰리처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 선발한다. 말하자면, 미국 신문의 지면을 뜨겁게 달군 가장 생생한 사진에 주는 상인 셈이다.
해외에 사진기자를 파견하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프리랜서 사진기자의 사진은 좀처럼 싣지 않는 우리나라 언론 풍토에서 미국 신문에 실렸던 사진들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는 사실은 솔직히 좀 부럽다. 인쇄매체의 위상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전 세계가 아우성이지만, 그럼에도 미 전역에서는 아직 5000개가 넘는 신문이 발행되고, 최대 부수인 월스트리트저널은 무려 200만부를 발행할 만큼 미디어의 토대 자체가 다르다. 퓰리처상 사진전에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을 만날 수 있는 건, 그 사건이 지니는 역사적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사에 개입하는 미국의 힘, 그리고 그 힘에 맞물려 움직이는 미국의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재앙, 죽음과 절망, 그리고 그 속에 싹트는 휴머니즘은 늘 언론의 주된 기삿거리였다. 퓰리처상 사진전은 해당 사진을 찍은 사진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조금 비틀어서 보면 정작 그 사진가들 뒤에는 사진가들이 현장에서 보내온 사진을 편집한 언론이 숨어 있다. 그래서 퓰리처상 사진전은 미국 언론이 시대의 아이콘을 만들어온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포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