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을 바꾼 남자… 개봉 9일째 관객 250만명 영화 ‘이끼’ 원작 만화가 윤태호
입력 2010-07-29 18:09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가 개봉 9일째 관객 250만명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강우석은 ‘공공의 적’ ‘실미도’로 누적 관객 3000만명을 돌파한 충무로 아이콘. ‘이끼’는 그가 4년 만에 내놓은 야심작이다. 그러므로 ‘이끼’가 성공한다면 공은 이 걸출한 흥행 감독에게 돌려도 좋다. 하지만 이런 평가라면 어떤가. ‘전혀 강우석답지 않은 강우석 영화.’
영화 ‘이끼’의 성패를 논할 때 시작은 윤태호씨의 원작만화 ‘이끼’가 돼야 한다. 그만큼 영화는 만화 ‘이끼’에 많은 빚을 졌다. 만화에서 빌려온 등장인물과 대사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이끼’는 원작 ‘이끼’와 같아지거나, 달라지려는 선택을 통해 만들어졌다. 캐릭터의 윤곽은 둘의 밀고 당기는 긴장 속에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충무로 파워’ 강우석을 강우석답지 않은 영화라는 미답지로 슬쩍 떠민 손. 그게 만화 ‘이끼’였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영화 ‘이끼’의 원작 훼손 논쟁이 한창이다. 원작의 열혈팬들은 영화가 미스터리스릴러를 산골마을의 나쁜 이장 이야기로 망쳐놓았다며 분개했다. 어떤 이는 두 작품이 충분히 비슷하지 않아서, 다른 이는 충분히 다르지 않아 화를 내고 있다. 27일 만화가 윤태호(41)씨를 만난 건 두 ‘이끼’ 사이의 거리를 재보기 위해서였다. 이 거리가 원작가가 꿈꿨던, 딱 그만큼인지가 궁금했다. 간극을 만든 게 영화와 만화의 거리인지, 강우석과 윤태호의 차이인지도 듣고 싶었다.
원작자에게 묻다
만화는 영화가 되면서 크게 두 가지가 달라졌다. 네티즌 논란의 핵심도 이 둘이다. 먼저 시간 구성. 후반부 플래시백으로 등장인물의 과거를 폭로하는 스릴러식 구성은 영화에서 시간 순으로 평이하게 바뀌었다. 두 번째는 주인공 아버지 죽음과 관련해서 부각된 슈퍼마켓 여자 ‘영지’ 캐릭터. 윤씨는 “나라면 그렇게 안했겠지만, 영화와 만화의 차이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만화에서야 과거로 돌아가는 게 어렵지 않지만 영화는 다르잖아요. 계속 시간대를 옮겨 다니면 이야기가 어려워지니까. 영화가 ‘18세 관람가’로 결정되면서 관객 폭을 넓혀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을 거예요. 전 애매하고 모호한 것, 눈빛 하나가 만드는 뉘앙스 차이를 즐기지만 대중영화는 명쾌해야 하잖아요. 만화에서 영지는, 연재하면서 내내 판단을 미루다가 막판 반전도구로만 쓴 측면이 있어요. 영화에서 제대로 살려주니까 되레 고마웠어요.”
윤씨는 여느 원작자와 입장이 달랐다. 웹툰으로 연재된 만화 ‘이끼’는 스토리 윤곽이 드러나기도 전에 영화화가 결정됐다. 이 때문에 윤씨는 수시로 불려 다니며 원작의 의도와 향후 전개를 설명해야 했다. 촬영이 시작된 뒤엔 대사를 다듬고, 새 장면을 만들어 넣기도 했다.
그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관여했어요. ‘얼마나 잘 만들었나 보자’ 팔짱끼고 지켜본 게 아니라 내부자 입장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린 거죠”라고 했다.
‘사인(死因) 없는 시신이 어딨노?’ ‘당신이 어떤 쓰레기통에서 뒹굴고 있는지 봐야겠어.’ ‘복잡하게 맹글어라. 그림이 눈에 보이게 하믄 안돼!’ ‘니는 신이 될라 캤나? 내는 인간이 될라 캤다.’ 영화에서 토씨까지 그대로 반복된 만화 속 대사는 셀 수 없이 많다. 윤씨는 “내가 대사를 직접 썼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했다. 주인공 류해국은 캐스팅되기도 전에 아예 주연배우 박해일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렸다. “그래도 이름을 류해국이라고 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어요…무의식의 작용이었을까요?”
영화 ‘이끼’에 만화가 윤태호의 지분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냥 재료만 보자면요. 캐릭터 이야기 배경 그런 게 다 만화에서 나온 거니까, 70% 정도? 하지만 그 재료를 배치하고 버무리는 건 전적으로 감독 몫이잖아요. 전개 방식도, 영지 캐릭터도 다 감독님 아이디어였고요. 그게 작품을 결정하는 거고. 강(우석) 감독님은 처음부터 아주 명확한 그림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 지분은 (웃음) 말하기 어렵겠죠.”
부럽지만, 싫은 영화감독이란 자리
만화는 자족적인 장르다. 아이디어와 컴퓨터(대다수 만화가는 종이, 펜 대신 컴퓨터로 작업한다)만 있으면 세계 하나를 창조한다. 영화는 집단창작이다. 자본과 스태프, 장비, 배우가 빠짐없이 갖춰져야 작품이 나온다. 윤씨는 ‘이끼’를 통해 만화라는 극단에 서서 영화라는 반대편 극단을 바라봤다.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컸다.
“회의하러 자주 영화사에 갔는데 하루는 책상에 평범한 농촌마을 사진이 걸려 있어요. 다음번엔 그게 스케치한 그림이 됐다가 다시 3D 컴퓨터그래픽으로 작업한 개념도로 바뀌는 거예요. 그 다음 회의에선 세트장 터파기 공사 사진이 떡하니 붙어 있고요. 그거는 진짜 부러웠어요. 영화감독은 자기 아이디어에만 집중하면, 주위에 그걸 현실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만화가는 수십 명 영화스태프 역할을 혼자 감당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가 카메라감독 캐스팅디렉터 조명감독 역할을 하고, 다음에는 소품담당 미술감독으로 변신한다. 자료 조사와 감수도 다 만화가 몫이다. 1년 연재한 ‘이끼’도 ‘1인 다역’(배경그림은 문하생 2명이 도왔다) 윤태호의 모노드라마였다.
“불빛 아래 그림자 방향까지 따져야 해요. 엉터리로 그릴 순 없으니까. 법적인 문제도 있어요. ‘이끼’에서 박민욱(유준상 분) 검사가 류해국을 돕기 위해 관할구역 밖에서 경찰병력을 동원하잖아요. 그게 가능한지,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알아야죠. 류해국이 도끼 든 마을주민에게 돌을 던질 때는 법적 책임을 따져야 하고. 연재하면서 아는 검찰 수사관에게 수십 번 전화했어요. 그분, 많이 괴로우셨을 거예요.(웃음)”
물론 윤씨는 자급자족 장르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건 그만큼 어깨가 가볍다는 뜻이다. 만화 한편 망했다고 출판사가 흔들리진 않는다. 실패해도 영향 받는 건 만화가 한 명이다. 하고 싶은 얘긴 하고 말아야 하는 예술가에게는 최고의 환경이다.
“나만 책임지면 되니까 내 길을 갈 수 있는 거예요. 내 아이디어만 붙들고, 나 하고 싶은 대로, 내 생각을 밀고 나가는 거예요. 영화 하나 잘못되면 작은 기획사는 아예 문 닫기도 하잖아요. 그 책임감이 보통 크겠어요? 영화감독 하라고 해도 못하죠.”(웃음)
마이너 만화가의 껍질을 깨다
윤씨는 한국 만화계가 오래 지켜보며 만개하길 기다려온 작가다. 그림 잘 그리는 만화가는 많았다. 그는 그림을 잘 그렸고, 스토리를 알았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했다. 캐릭터를 설정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끼’의 이장은 만화사가 기억할 얼굴이다. 20대 시절에는 독종으로 유명했다. 노숙하며 만화학원에 다녔다. 잡지 데뷔 후에는 연재 제안까지 거절하고 드라마 대본을 베꼈다. 첫 작품의 스토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정말 독하게 공부했어요. 초등학생처럼 동그라미 생활계획표 그려놓고 그대로 살았어요. 그림 연습지가 라면박스로 몇 박스씩 나오고. 그렇게 그려대면 잘 그리지 않을 도리가 없는 거죠(웃음). 만화가 허영만 조운학 선생님 문하생으로 있을 때는 만화뿐이었어요.”
영화 개봉 뒤 만화 ‘이끼’의 온라인 1일 클릭 수는 50만∼60만건에서 350만건으로 6∼7배나 늘었다(무료여서 수입은 없다). 초판 3000부조차 팔리지 않던 단행본 ‘이끼1∼5’ 판매부수는 5만부를 넘어섰다. 하루 주문량이 2000∼3000부씩 쏟아져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윤태호 작가가 마니아 취향이어서 책이 잘 나가지는 않았는데 영화 덕에 주문이 밀려든다”고 했다. 영화 ‘이끼’가 지난 10여년 지겹게 따라붙던 ‘마이너 감성의 작가’라는 꼬리표를 떼어낸 것이다.
정작 작가 윤태호에게 기쁨은 좀 더 사적이고, 그래서 더 공감이 갔다.
“스토리 살펴보는 첫 시사회 때는 내가 만든 대사가 화면 속 배우들 입에서 튀어나오니까, 손발이 막 오그라들고. 정신이 없더라고요. 두 번째 볼 때는…그땐 정말 짜릿했죠.”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