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권력 쪼개져있는 미국에선 오래전 사라진 관행”
입력 2010-07-30 14:25
상현 마이클 리, 교포 美검사 눈에 비친 검찰 스폰서 관행
상현 마이클 리(38·한국명 이상현) 검사의 한국말은 짧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미국으로 이민 갔고 19세에 한국을 찾아 20일 머문 것이 전부다. 그는 일부러 이 표현을 외운 듯했다.
“누구는 코끼리 다리만 보고, 누구는 귀만 봐요. 보고 싶은 것만 보죠. (한국에) 미국 사법제도 전체를 보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온 거예요.”
미국은 항상 참고가 된다. 검찰 개혁에도 어김없다. 하지만 같은 ‘귀’도 누가 묘사하느냐에 따라 모양새가 정반대였다.
“(미국) 검사장급은 선거에 의해 선출되므로 유명 사건 해결에 심혈을 기울이고 유죄판결 심리에 사로잡혀 있다… 검사장은 다음 선거에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내부의 적(유능한 부하 검사)에게 중요한 사건을 맡기지 않는다.”(2005년 현직 검사의 일간지 기고문 중에서)
“국민이 선출한 (미국) 검찰총장은 아무 눈치 볼 필요가 없고, 4년 임기가 보장되며, 대통령이나 주지사 등 다른 권력자와 당당히 겨룰 수 있다.”(2009년 검찰 개혁을 촉구한 주간지 기사 중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 검찰청 검사인 그는 이 간극을 좁히고 싶어 했다. 지난 5월 법무연수원 비상임 연구위원으로 한국에 왔다. 미국 사법제도 연구에 조언하고 한국 검사들을 상대로 강의도 하고 있다. 6개월로 예정된 한국 생활이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 27일 만난 그는 그동안 한국을 알게 된 만큼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미국 검사, 공무원이거나 계약직이거나
마이클 리 검사는 1999년 검사가 됐다. 올해로 11년째. 평검사 중엔 가장 높아 위로는 부장검사뿐이다. 줄곧 산타클라라에서만 일했다.
“미국 검사들은 일하는 곳 검사장에게 직접 고용돼 있어요.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직장 옮기는 것과 비슷해요. 인터뷰를 거쳐 그곳에 다시 취업하는 거죠. 한국은 1∼3년마다 옮겨 다니죠? 그건 검사들에게 힘든 시스템이에요.”
미국 검사들은 공무원(civil servant)이거나 계약직(at-will)이다. 연방 검사는 모두 공무원이지만 주(州)나 카운티 검사들은 제각각이다.
“산타클라라 검사는 공무원이에요. 그래서 근무 환경이 나은 편이죠. 계약직인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은 검사들이 자주 바뀌어요.”
하지만 공무원이라 해도 첫 1∼2년은 수습기간(probation)이다.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 특히 재판에서 승률이 좋지 않으면 위험하다.
“한국 검사들은 순한 편이에요. 미국 검사들은 배심재판을 이겨내야 하거든요. 그걸 잘하려면 독기가 많아야 해요. 배심재판 이기기 어렵거든요. 한국에선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잘리지 않고 계속 검사할 수 있잖아요?(웃음)”
미국 사법체계는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연방, 주, 카운티 검찰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저마다 독자적인 시스템을 운영한다. 외부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FBI(연방수사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가 왔다면 경찰이 온 거라고 생각하죠?”
미국 드라마 보면 그렇던데, 아닌가?
“FBI는 법무부 소속 수사기구의 경찰이에요. FBI는 연방 검찰이 보내는 거죠. 그러니까 그들이 왔다는 건 연방 검찰이 움직인다는 의미예요. 몰랐죠? 하하, 괜찮아요. 한국 검사들도 모르던데요.”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난해한 미국 검찰 시스템을 알아야 했다.
모든 힘을, 모두에게
-스폰서 검사 얘기 들어보셨어요?
“아, 푸산(부산) 스캔들이요? 미국에선 아주아주 옛날에 없어진 거예요.”
미국 검찰은 연방검찰청(US Attorney’s Office), 주검찰청(State Attorney General’s Office), 카운티마다 있는 지역검찰청(District Attorney’s Office)의 세 가지로 나뉜다. 세 기관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범죄 관할권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은행 강도는 연방 검사만 다룰 수 있지만 일반 살인사건은 주 검사나 카운티 검사에게 우선권이 있는 식이죠.”
각 검찰청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부패 방지다. 누군가가 매수돼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을 때 이를 다른 검찰이 조사할 수 있다.
“연방 검찰은 연방법을 어긴 범죄만 기소할 수 있어요. 하지만 법이란 게 걸면 다 걸리게 마련이죠. 복지법인 원장이 돈을 횡령했다면 그는 주법뿐 아니라 연방법도 위반하게 돼요. 세 검찰청이 모두 관여할 수 있는 거예요. 세 검찰은 서로 연관돼 있지 않아요. 카운티 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한다 해도 주 검사는 기소할 수 있어요. 카운티 검사는 주 검사를 저지할 수 없고 반대도 마찬가지죠. 세 곳이 같은 사건을 보고 모두 독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요.”
한국 검찰의 검사 동일체 원칙과 정반대 시스템이다.
“한 검찰청이 누군가의 불법을 발견했어요. 근데 기소를 하지 않고 ‘이렇게 조치하면 기소 안 할게’라고 해요. 나중에 다른 검찰청에서 그 사건을 다시 조사해 피의자를 기소했어요. 그럼 피의자는 첫 번째 검찰청을 고소할 수 있어요. 잘못된 조언을 해준 혐의죠.”
검찰청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은 서로를 감시하는 데도 유리하다. 연방 검사가 사람을 때리면 카운티 검사가 기소한다. 주 검사가 음주운전하다 적발돼도 카운티 검사가 기소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모두를 감시합니다. 주와 카운티 검사들의 부패는 연방 검사들이 들여다보죠. 연방 검사들은 법무부에 있는 감찰조직이 뒤집니다.”
미국 연방검찰청은 93개로 쪼개져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그 수장들은 한국의 지방검찰청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권한과 책임은 한국의 검찰총장에 해당한다. 지휘 계통에 그들보다 높은 검사가 없기 때문이다.
“한 곳에 힘을 몰아주면 안 된다는 게 미국인들의 생각이에요. 한국인들은 사법·입법·행정부 간 견제만 따지는데 같은 조직 내에서의 견제가 더 중요합니다.”
미국의 주검찰청장과 지역검찰청장은 주민들이 직접 뽑는다. 주지사와 정치 성향이 다른 이가 선출되는 경우도 많다.
“연방은 연방대로, 주는 주대로 각각 우선시하는 범죄들이 있어요. 연방은 테러리즘에 초점을 맞추지만 지역 주민들은 마약범죄, 산업 스파이 수사를 더 원할 수 있죠. 지역검찰청은 그 지역 주민들 요구를 따르게 되죠.”
‘선샤인 폴리시(sunshine policy)’도 검사들의 부정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 검사들은 자신들이 받은 선물 내역을 모두 공개해야 합니다. 기자들이 내역을 열람할 수 있어요.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다가는 해고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사법비리 방지 시스템의 정점에 배심재판이 있다고 했다. 판결을 배심원들이 좌우하고, 어차피 배심원 12명을 모두 매수할 순 없으니 검사나 판사에게 돈을 쥐어줄 이유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국이 당장 미국처럼 검찰을 지역별로 독립시키긴 불가능하다. 배심재판을 전면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게 공직비리수사처다. 그는 “그런 기관을 만들면 그곳으로 검은 돈이 몰릴 것이다. 미국은 절대 한 곳에 힘을 몰아주지 않는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을 많이 만들어 서로 감시토록 하는 게 미국식”이라고 했다.
경찰과 검찰도 서로 감시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건 검찰과 경찰 간에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검찰과 경찰은 각각 거대한 국가조직이에요. 서로를 라이벌로 보죠. 하지만 미국은 경찰도 검찰도 모두 쪼개져 있어요. 같은 지역 검찰과 경찰은 라이벌이라기보다 팀 동료라는 의식이 강합니다.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도 많아요. 검사는 기소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경찰이 고개를 저으면 검찰이 혼자 수사합니다. 반대로 경찰이 기소를 원하는데 검사가 거부하면 그들은 텔레비전으로 달려가요.(웃음)”
그는 산타클라라에서 있었던 캠퍼스 성폭행 사건을 예로 들었다.
“몇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산타클라라 검찰청이 기소하지 않았어요. 경찰 책임자가 TV 뉴스에 출연해 검찰을 비난했죠. 그러자 산타클라라 검찰은 ‘주 검찰청의 판단을 받아보라’며 주 검찰청으로 사건을 넘겼어요.”
경찰과 검찰이 서로의 비리를 수사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카운티 경찰이 카운티 검사의 비리를 적발하면 카운티 검찰청에 넘기지 않아요. 바로 FBI를 부릅니다. 독립된 다른 검찰에 기소를 맡기는 거죠.”
마이클 리 검사는 권력을 쪼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알 카포네 아시죠? 1920, 1930년대 유명한 시카고 갱단 두목. 돈으로 일리노이주 검사장, 시카고 검사장을 모두 손아귀에 넣고 있었어요. 아무 문제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였죠. 그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감옥에 갔습니다. 왜일까요? 연방 검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연방 검사까지 매수할 순 없었던 거예요. 이게 미국 사법제도의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업무를 하면서 비슷한 힘을 갖고 있어요. 나쁜 사람들이 이걸 모두 피해가기란 아주 어려워요. 미국인들은 하나의 기관이 전부를 다루는 걸 원하지 않아요.”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