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토마토, 앞으로 먹을까 뒤로 먹을까… ‘오리발에 불났다’
입력 2010-07-29 18:20
오리발에 불났다/유강희 시·박정섭 그림/문학동네
평소엔 동시에 관심도 없던 기성 시인들의 동시집이 출간되고 있다. 동시에 도전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기성 시인들이 자신의 서정성을 과신한 나머지 억지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동시집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동시로 들어가는 문의 턱은 보이지 않게 높다. 자칫 말장난이 되기 쉽다.
유강희(42) 시인의 경우는 다르다. 그의 젊은 날은 특별했다. 말수 적고 부끄럼을 많이 탔다. 등단 10여년이 지났건만 부끄럼은 여전하다.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농촌 풍경에 얽힌 내면의 슬픔을 언어로 형상화해왔고 지금껏 유행과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서정시의 아련한 본연을 지키고 있다.
“앞에서 먹어도 토마토/뒤에서 먹어도 토마토”(‘토마토’ 전문)
거꾸로 읽으나 바로 읽으나 토마토는 토마토다. 어느 쪽에서 먹어도 토마토는 토마토다. 시와 동시를 쓰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동시의 맛은 이처럼 시와 다르다.
“저수지 얼음판 위로/기우뚱 뛰어내리는 물오리들//엉덩방아 찧는 오리/주둥이로 못을 박는 오리/앞가슴으로 걸레질하는 오리//지이이익 미끄럼 타는/오리들 발바닥에 불났다//불났다, 불났다, 불났다//호떡집이 아니고 저수지 한복판에”(‘오리 발에 불났다’ 전문)
유강희 시인의 오리 사랑은 남다르다. 거의 매일 강에 나가 오리를 본다는 시인은 오리를 볼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삶의 활력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오리야말로 동심의 세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물 위를 유유히 헤엄쳐가는 오리도 실은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인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오리는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매미는 파스처럼/나무에 붙어서 우는 게 아니라/나무하고 이야기하는 거다//살구나무에겐 살구가 좀 더 달았으면 좋겠다고/단풍나무에겐 단풍잎이 좀 더 붉었으면 좋겠다고//입이 없는 나무들은/잎으로 대답하려고/혼자 끙끙 애쓰다 푸른 그늘을/그만 제 발등에 좌르르좌르르 쏟아놓는다”(‘매미와 나무’ 전문)
생활 주변의 사물이나 일상의 익숙한 경험이라 할지라도 유강희 시인의 동시에서는 새롭고 재밌고 특별한 것으로 바뀌어 있다. 그러한 동시를 만난 아이들은 어느덧 상투적 인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