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리퀘스트’ 600회 이끈 전진국 KBS 예능국장, “장애인·서민이 사랑의 전화 더 자주 주셨죠”
입력 2010-07-28 21:30
“따르릉, 한 통화에 천 원입니다.” ARS 전화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해온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토 오후 5시35분)가 지난 24일로 600회를 맞았다. 그 동안 ARS 모금과 일반 후원금을 포함해 총 697억원을 모았고, 4만3000여명의 이웃들에게 사랑을 배달했다.
13년 전 “음악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며 이 프로그램을 만든 PD는 현재 예능국장이 돼 KBS의 교양·오락 프로그램을 지휘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난 전진국(53) KBS 예능국장은 “낮은 시청률 때문에 폐지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이 프로그램으로 도움 받는 사람들이 호소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공영방송에 걸맞은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1997년 10월 24일 힘겹게 세상에 나왔다. “1996년 사회를 밝게 하는 자선음악회를 기획했어요. 연말 특집, 계절 개편 때마다 기획안을 올렸지만 당시 제작 여건이 안 좋아 번번이 거절당했지요.”
편성이 확정된 후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기획 단계에서는 한 통화에 5000원으로 책정했지만 일반인에게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방송 직전 1000원으로 내렸다. ARS 모금은 국가의 허락이 필요해 당시 내무부를 찾아가 설득 작업을 벌였다. 후원금을 관리하는 단체로 한국복지재단(현 어린이재단)을 선정하기까지 수십개 사회복지단체를 검증해야 했다.
“첫 방송할 때는 홍보도 제대로 안 됐고 생방송이어서 2000만원이나 모이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억원이 넘어서 너무 놀랐어요. 한국인들 심성이 참 고와요.”
기적은 계속됐다. 1998년,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맬 때였지만 오히려 모금액이 늘었다. 100회 특집 때는 그간 가장 많이 전화를 건 시청자를 초청했는데, 주인공은 영세한 분식집을 꾸려가는 지체장애인이었다.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 처지를 잘 알듯이, 오히려 장애인이나 서민들이 더 많이 전화를 걸어왔지요.”
‘사랑의 리퀘스트’는 이미지가 좋아 섭외가 힘든 톱스타나 인기 아이돌도 흔쾌히 출연한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HOT와 젝스키스도 거쳐갔어요. 이 때는 두 팬클럽이 서로 경쟁하느라 열심히 전화를 걸어서 모금액이 늘었지요(웃음).”
13년이 지났지만 전화 한 통의 후원금은 여전히 1000원이다. 하지만 요즘은 최대 3통까지 허용된다. 후원을 더 많이 하겠다는 시청자들의 요청 때문이다.
지난 3일부터 ‘사랑의 리퀘스트’는 600회를 기념해 톱스타들이 해외 빈곤국을 찾아 봉사하는 ‘희망로드 대장정’을 방영 중이다. 오는 31일에는 영화배우 이성재의 ‘볼리비아’편이 방송된다.
“어려운 이웃들이 얼굴을 활짝 펴는 날이 와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 없어진다면 더 이상 리퀘스트(도움 요청)를 받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 KBS는 ‘사랑의 리퀘스트’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