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오종석]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묘비
입력 2010-07-27 21:54
‘조상 무덤의 비석에 녹색 페인트를 칠하거나 녹색 그물을 씌워라.’
중국 윈난(雲南)성 한 지방 도시가 외견상의 녹화율(綠化率)을 높이기 위해 모든 조상 무덤의 비석을 녹색으로 개조하도록 강요해 물의를 빚고 있다고 베이징 신경보가 최근 보도했다.
윈난성 쿤밍(昆明)시 이량(宜良)현 국도에서 거우제(狗街)로 향하는 도로 양쪽 인근 무덤의 묘비는 현재 모두 녹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또 일부는 녹색 그물이 씌워져 있다. 최근 현 정부가 대외적으로 녹화율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지역 주민들에게 흰색 묘비가 보이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현 정부는 10여일 전 “모든 가정은 조상의 무덤 묘비를 녹색 페인트로 칠하거나 아니면 녹색 천으로 덮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덤을 폭파시켜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서둘러 묘비에 녹색 페인트를 칠하거나 녹색 그물을 덮어씌웠고, 일부에서는 볏짚을 이용해 묘비를 가리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는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한 누리꾼은 “백성을 바보로 보고 있다”면서 “이런 관원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슬프다”고 말했다. 또 “살아 있으면 주택을 살 능력이 없고, 죽어도 매장할 곳이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까지 관리하려 한다” “관원들의 아이큐가 너무 높아 노벨상을 신청해야 할 지경이다” 등 누리꾼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중앙 정부에서는 도시를 평가할 때 녹화율을 하나의 중요한 지표로 보고 있다. 따라서 지방별로 대대적인 녹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쿤밍시 정부는 최근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산하 지방 정부에 나무만 보이고 무덤, 특히 묘비는 보이지 않도록 무덤 정돈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이런 기이한 방법까지 동원된 것이다.
논란이 일자 현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그렇게 하도록 한 게 아니다”면서 “무덤을 정돈하라는 지시만 내렸는데 개별 촌민들이 꾀를 부린 것”이라고 변명했다.
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