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재개발 사업지’ 현장… “집값만 올려놓고 손 놓으면 어쩌나” 흉흉한 민심

입력 2010-07-27 18:39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기 성남 구시가지 재개발사업 포기 결정에 따른 파장이 타사업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LH가 추가로 사업을 철회, 취소할 수 있다는 방침에 수개월 전부터 ‘재검토 지구’로 지정된 재개발 사업지구에서는 주민 반발이 극에 달하는 등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27일 오전 서울 가리봉동 125 일대 가리봉 재정비촉진지구, 일명 ‘가리봉 뉴타운’ 예정지구. 동네 입구로 들어서자 좁은 골목길 사이로 간판이 반쯤 떨어져 나간 상가와 곧 무너질 듯한 허름한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100여m를 걸어 올라가자 낡은 슈퍼마켓 안에 동네 주민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남도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우리만 당한 게 아니라니까. 만약에 사업이 완전히 무산되더라도 정부는 건축허가라도 내줘야지. 그래야 리모델링이라도 할 수 있잖아.” 이 지역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소진남(64·여)씨 얘기에 주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리봉 뉴타운은 2006년 4월, 도시환경정비사업 대상지역으로 지정됐다. 총 면적이 33만㎡에 달해 기존 시가지를 대상으로 한 단일 사업구역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상업·업무 중심의 뉴타운으로 개발되면 원주민과 업무 종사자 등을 위한 아파트(5430가구)와 오피스텔(1389실)이 함께 들어설 예정이었다. 당시 주택공사(현 LH)가 사업시행자로 지정됐지만 LH는 지난 4월 “자금난 등을 이유로 사업추진 여부를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사업 재검토 소식이 전해진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동네 민심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법적 소송 얘기는 기본이고 세입자와 집주인 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가리봉 뉴타운 비상대책위원회 김대정 부위원장은 “국회의원 선거나 구청장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우리 동네를 이용만 해왔다”면서 “사업 추진 과정이나 실현성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쉬쉬해왔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지역에는 한국인들은 거의 다 떠나고 중국교포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수다. 지역 주민 서용석(55)씨는 “세입자나 집주인이나 재개발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재개발한다고 집값만 올려놓고 이제 와서 정부가 손을 놓아버리면 도대체 어쩌라는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재개발 추진 주체가 공기업인 LH에서 민간 사업자로 바뀌더라도 ‘산 넘어 산’이라는 입장이다. 주민들은 “조합을 만들고, 시공사를 선정하는 데만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라며 “욕을 하면서도 정부와 구청의 대책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LH 추가 포기 사업장, 내달 중 윤곽=LH 사업조정심의실 관계자는 “현재 추진 중인 138개 신규사업장을 대상으로 사업성 평가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최종적으로 포기하는 사업장에 대한 발표 시기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평가 결과를 토대로 해당 지자체 및 국토해양부 등 관련부처와의 협의 일정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다음달 중에는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LH에 따르면 현재 토지 보상이 이뤄지고 있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276곳은 사업 철회 또는 취소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주로 신규대상 사업들 가운데 재개발이나 도시환경정비, 주거환경개선 사업 등이 포함된 도시재생지구 등이 재검토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LH의 사업성 검토 결과 이른바 ‘포기 사업 리스트’가 나오면 해당 지자체는 물론 주민들의 민원 제기와 법적 소송이 잇따르는 등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건설업체도 LH 포기 사업장에 ‘눈독’=건설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단 상황을 주시하면서도 LH가 포기, 또는 재검토에 들어가는 사업장에 대해 진출 가능성은 없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대형건설사인 S건설 관계자는 “LH가 포기한 사업장들이 민간에 넘어오게 되면 건설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포션’이 늘어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공영개발에서 민영개발로 넘어가려면 인·허가에만 1년 가까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상황을 계속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반면 P건설 관계자는 “우리도 시장상황이 안 좋아서 연내 추진키로 한 서울 행당동 재개발 단지 분양을 연기하기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라며 “LH가 포기하는 지역은 현 상황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김우수 김창현 대학생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