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교수의 설교 비평(3) '축복을 전하는 영적 설교' 조용기 목사
입력 2010-07-27 14:29
축복을 전하는 영적 설교: 영산 조용기 목사의 설교세계
영산 조용기 목사는 한국 개신교 120년 역사에서 가장 큰 시샘과 부러움의 한복판에 서 있어온 인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교회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조 목사는 ‘성공적 목회’의 대명사이자 목회 초년병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영산의 ‘규모의 목회’는 진정한 목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고 그의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으로 대변되는 복음이해는 진정한 기독교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을 야기시키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의 화융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영산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오순절 목회자’가 된 것과 한국 교계에 영향력을 가진 큰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필자는 영산이 이룬 ‘규모의 목회’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결정체라고 본다. 우선 가장 핵심적인 것은 조 목사를 통해 나타난 ‘신유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조 목사를 통해 수많은 병자를 고쳐주셨고 이러한 치유의 소문은 교회 성장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이렇게 모인 회중을 유지하고 훈련하기 위해 조 목사가 사용한 핵심적인 전략이 셀 그룹(Cell Group)을 통한 조직적 관리,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이라는 축복 지향적 복음, 방언과 은사 강조를 통한 회중의 종교성 자극, 그리고 영혼을 자극하는 영산의 설교 등이다.
단일교회로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일군 조 목사는 기독교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설교 역시 이런 관심의 영역에서 예외가 아니다. 특히 한국교회사학연구원에서 ‘한국교회 10대 설교가’를 선정하여 매년 집중적인 연구를 해오고 있는데 그 첫번째 인물로 조 목사를 선정한 것만 보더라도 그의 설교가 모두의 관심임을 알 수 있다. 이 단체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1960, 70년대 소외된 민중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이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민중치유설교와 성령의 내재된 은사를 강조하는 은사주의 설교의 모델”로 규정한다. 확실히 그는 유동식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용도와 유사한 모성적 성령운동의 큰 흐름을 대변하는 인물이자 민중을 향한 소망의 복음을 청중의 눈높이에 맞춰 전하는 설교자이다. 특히 조 목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집회에서 유창한 영어설교로 복음을 전하는 아시아의 빌리 그레이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탁월한 성과의 이면에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어려서부터 부둣가에서 노동하면서 만들어진 강인한 책임감과 적극적인 성격, 고등학교 시절 미군들로부터 배우기 시작한 영어, 폐결핵으로부터의 신유 체험, 그리고 강력한 성령체험 등이 그를 형성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조 목사는 개인적으로 머리가 비상할 뿐 아니라 강인한 집념의 소유자이고 목표를 정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진하는 인물이다. 교회 성장이 성령의 도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조 목사 개인의 특성 역시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음도 분명하다.
물론 조 목사의 신학과 설교에 대해 찬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신학은 성도들을 광신적, 감각적인 신앙생활로 유도할 위험이 있고, 현세중심?성공중심?물질중심의 기복신앙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는 공격을 받아왔다. 또 그의 설교와 관련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성령만을 강조하는 설교라는 것, 개인의 복만을 강조하는 기복적 설교라는 것, 사회책임과 사명을 소홀히 하는 개인구원 지향적 설교라는 것, 기적적 치유를 강조하는 극단적 신비주의 설교라는 등의 비판이 가해졌다. 아마도 이런 비판은 유명세를 치른다는 덕담을 넘어 조 목사가 진지하게 떠안아야 하는 과제라 할 것이다.
필자가 한세대에서 시무할 때 신대원생들의 상당수가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흉내(?)내는 것을 보면서 교육을 위한 모방(imitatio)의 필요성과 함께 자기만의 창조성(creatio)을 강조한 적이 있다. 확실히 설교를 발전시키는 첫 걸음은 탁월한 설교자를 모방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 목사는 우리에게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우선 조 목사의 설교는 회중을 읽는 눈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그가 처음 개척한 대조동 지역은 절대절망과 빈곤 그 자체였고 확장 이전한 서대문교회 교인의 상당수는 호남과 영남에서 올라온 가난한 계층이 주부류였다. 조 목사는 이들이 밥을 달라는데 톱밥을 줄 수 없었다고 술회 한다: “나의 설교는 전적으로 삶의 문제 해결을 메시지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영적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문제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처음 목회를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철저하게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설교해 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조 목사가 사중복음에 ‘축복’을 첨가한 것이나 영혼구원으로만 경도되어 있는 기성교단과 달리 ‘삼박자 구원’이라는 ‘온전한 구원’을 강조하는 것은 ‘회중의 필요’를 읽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조 목사는 설교의 궁극적인 기능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흔히 영산은 김선도 목사와 더불어 ‘한국의 로버트 슐러’라 불린다. 그만큼 이 두 사람은 ‘긍정적 사고’ ‘희망’을 강조한다. 영산은 이러한 경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가난하고 어렵고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설교자가 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1958년도에 대조동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설교를 해왔습니다.” 이런 철학은 그의 설교에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해 주었다. 즉 설교는 궁극적으로 회중들에게 ‘할 수 있음’을 말해야지 ‘무력감’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조 목사의 설교는 ‘할 수 있게 하는 설교’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밖에 철저히 성경본문에 의존하려는 성경적 설교, 그리고 설교 이전에 3~5시간씩 기도하는 철저한 영적인 준비는 탁월한 지식은 넘치면서도 영성의 날카로움이 떨어지는 오늘의 설교자들에게 도전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조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지성의 만족은 덜하지만 무언가 영적인 포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기도로 얻어지는 영성 때문이리라.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가 지닌 전달의 힘이다. 영산은 청중과 하나 되기 위해 스스로 사용하는 방법을 기초로 정확한 표현, 간결하고 쉬운 말, 감각적 (시청각적) 표현, 다각적인 수식어, 극적인 대조법, 열거법을 통한 반복, 현재진행형적인 표현, 대화식 표현 등 여덟 가지를 제안한다. 거기다 전성기의 심장보다 빠른 속도의 설교진행은 매우 강력한 선동력으로 회중을 파고든다.
이제 은퇴하여 주일 강단만을 지키지만 조 목사는 분명 한국 기독교사에서 그리고 설교사에서 기억해야 되는 주요한 인물이다. 다만 여전히 조 목사의 설교와 관련해 좀 더 복음의 균형을 강조함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성도를 양성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매주 1000명 이상의 새신자가 등록하는 현실임을 인정한다 해도 조 목사의 설교는 목회설교와 전도설교의 줄타기에서 분명한 노선을 정해야 한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기신자들의 지속적인 신앙성장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조 목사는 철저한 연역적 대지설교로 일관해 왔다. 그 나름의 장점을 인정하고 조 목사에 대한 성도들의 절대적인 존경에서 당연한 방식일 수 있으나, 그의 지도적 위치를 감안하면 그리고 젊은이들을 교회 안으로 수용해야 하는 이 시대의 절박성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서라도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선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의 인생 연륜에 바탕한 이야기식 진행을 좀 더 강화했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사석에서 인생의 황혼을 맞은 조 목사의 담담한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받았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위대한 복음의 사역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거인 조용기 목사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교계의 어른으로, 젊은 설교자들의 사표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정인교(한국설교학회장, 서울신학대 설교학 교수)